29. 김정희의 ‘무량수각’ : 추사가 세운 기호적 극락세계
29. 김정희의 ‘무량수각’ : 추사가 세운 기호적 극락세계
  • 주수완
  • 승인 2020.10.13 10:23
  • 호수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관경변상도 기호화해 표현한 최초의 예술가

대흥사  원교 ‘대웅보전’ 대신 새로이 ‘무량수각’ 현판 써줘
추사의 무량수각은 중생을 맞이하는 아미타부처님 보는 듯
글씨뿐 아닌 불교적 논쟁에 참여할 정도로 교학에 조예 깊어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 원교 이광사의 글씨.
대흥사 ‘무량수각' 현판, 추사 김정희 글씨.

잠시 시간을 되돌려 조선후기로 돌아가 본다. 예술에는 그림, 판화, 조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예도 있다. 현재 사찰에는 명필이셨던 큰스님들의 현판도 많이 걸려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나름대로 명망있는 선비들의 글씨로 현판을 거는 일이 많았다. 사찰 전각에서 현판은 때로는 화룡점정처럼 그 전각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얼마나 멋진 글씨가 정면에 걸려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절의 품격하고도 연관되는 일이다. 덕분에 조선의 선비는 직·간접적으로 불교미술 창작에 연관되는 일이 많았던 셈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현판글씨로 가장 명성을 떨치고 있는 분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일 것이다. 흔히 그를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창시자로 칭송하지만, 그의 서체가 완전히 새롭게 창안된 것은 아니었고, 기본적으로는 왕희지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또한 신라의 명필로 알려진 김생도 왕희지의 서법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으니, 나름대로 신라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의 격정적으로 구불구불 거리는 서체는 왕희지체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하나 서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특히나 물을 닮았다고 해서 물의 기운이 화재를 막아준다는 생각에 더더욱 그의 글씨로 현판을 걸고자 하는 절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현판이다. 많은 분들이 익히 알고 계시는 이야기일 것이다. 바로 유배길을 가던 추사가 대흥사에 걸린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을 보고는 초의선사에게 “무슨 저런 현판을 걸어두었느냐”며 핀잔을 주고는 그 자리에서 무량수각이란 글씨를 새로 써주어 교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때 써주었다는 무량수각 현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솔직히 아직 그 이야기가 어디에 실린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필시 다소 과장이 있는 듯하다. 우선, ‘대웅보전’ 현판을 떼고 새로 걸 것이라면 그대로 대웅보전이라고 써줘야 하는데, 왜 ‘무량수각’이란 현판을 써주었을까. 아무리 추사이지만, 어떻게 사찰 전각의 이름까지 마음대로 바꾼단 말인가. 혹 대흥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불상이 사실은 아미타불이기 때문에 추사가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했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대흥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삼세불로서 주불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므로, 전각의 명칭도 대웅보전이 맞다. 

더구나 현재의 무량수각 현판은 크기도 대웅보전 현판에 비해 작아서 대웅전에 걸기에 적합하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대흥사에 극락전이 아예 없으니, 더더욱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추사가 대흥사를 지날 당시 새롭게 극락보전이 지어졌고, 이를 위해 새 현판을 써주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대웅전의 원교의 글씨를 비판한 것도 사실이리라. 그러나 교체하라고 지시까지 한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더불어 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보통은 ‘무량수전’이라고 하는데, 왜 ‘무량수각’이라고 썼을까? 

여기서 ‘각’은 보통 2층 이상의 화려한 집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殿)’은 건축에 있어 위계상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건축의 개념인데 반해 ‘각(閣)’은 위계상이 아니라 ‘누각’처럼 실제 공간적으로 높은 집을 의미한다. 무량수각 현판을 보면 이 ‘각’자의 부수인 門이 마치 높은 기둥과 그 위의 지붕처럼 보이고, 그 아래 各은 이 누각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처럼도 보인다. 그의 글씨는 이처럼 그림처럼 보이기도 해서 마치 상형문자의 일부는 원래 자연의 형상을 본뜬 것임을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맨 앞의 ‘무’자를 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획이 많은 ‘無’ 대신 단순한 형태의 이체자인 ‘无’를 사용했다. 이 글자를 보면 왠지 이광사의 대웅보전 현판에 쓰인 ‘大’자는 마치 사람이 바깥 방향으로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같다고나 할까? 필자는 이 글자를 보면 니체가 말한 ‘초인’이 연상된다. 이광사는 대웅보전의 주인공 석가모니를 이처럼 초인의 모습으로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에 반해 추사의 ‘무’는 바깥쪽으로 달려나가기 보다는 양팔을 벌려 누군가를 맞이하는 듯한 사람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획의 끝이 동그랗게 솟아있는 것은 법륜 같기도 하고, 아미타부처님의 시무외인 수인을 연상케도 된다.

그 다음 옆에 있는 자는 ‘량(量)’이다. 마치 ‘里’를 아래위로 겹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아래는 크고 위는 작으니, 마치 아마득한 공간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日’이 아래서 위로 점차 솟아오르는 것이 흡사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광활하고 무한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끝으로 ‘壽’는 수명을 뜻하는 것인데, 획이 굉장히 복잡한 것이 마치 노인의 주름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제사상에 제기와 음식이 가득찬 것처럼도 보인다. 또는 여러 사람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16관경변상도.

이 현판을 하나의 그림이자 기호로 보고 종합하여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각’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우화루와 같은 누각이다. 그리고 ‘수’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극락세계로 들어오니 대승의 개념이다. 그리고 ‘양’은 아미타 부처님이 만든 극락이라는 세계의 무한한 공간성을 의미한다. 원래 아미타불의 어원의 하나인 ‘아미타바(Amitabha)’는 무한한 빛이자 무한한 공간을 의미한다. 무한한 빛인 두 개의 日이 넓게 퍼져 있으니 곧 무한한 공간, 즉 무량광불이기도 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한한 극락의 공간에 들어오는 중생들을 아미타부처님이 손을 벌려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 의도된 것이라면, 이 현판은 그대로 한 폭의 관경변상도이다. 

어쩌면 김정희는 전통적인 16관경변상도를 기호화하여 표현한 최초의 예술가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는 그저 글씨만 써준 것이 아니라, 백파 긍선과 초의 선사의 불교적 논쟁에도 참여할 정도로 교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니, 불교를 사랑한 예술가들에서 어찌 그를 빼놓고 넘어갈 수 있을까.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