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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2010)

인물 행위에 전생·현생·윤회 녹여낸 불교영화

분미, 살생 업보로 신장 질환 얻어 죽음 맞기 위해 귀향 선택
분쏭 기억 지운 ‘강’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통과제의 관문
임종 앞두고 동굴 귀환…자궁회귀이자 윤회 바퀴 돌리기 위함

아피찻퐁은 ‘엉클 분미'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사진은 영화 ‘엉클 분미' 스틸컷.

영화는 생산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성장하는 나무와 같다. 한국의 소나무는 한국을 닮고 한국의 멸치는 한국인의 모습을 닮아가고 태국의 소나무는 태국을 닮고 태국의 가오리는 태국인을 닮았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에는 태국 종교와 문화가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아피찻퐁은 ‘엉클 분미’(2010)를 통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다시 한 번 태국을 대표하는 감독임을 입증했다. ‘엉클 분미’는 가장 태국적이면서 아피찻퐁의 영화 세계를 극명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불교영화 측면에서 윤회와 업보를 개념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장면과 인물의 행위에 잘 녹여낸 불교영화로 손꼽을 수 있다.

‘엉클 분미’는 신장 질환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귀향하는 분미가 주인공이다. 아피찻퐁은 작품에서 전생과 현생 그리고 윤회의 문제를 사변적이지 않고 즉물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프레임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사운드로 표현한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인위적이지 않은 연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첫 장면에서 “정글과 언덕 계곡 앞에 서면 짐승이나 혹은 다른 존재였던 전생이 떠오른다”는 자막을 새겨 넣는다. 곧장 첫 시퀀스에 숲속의 물소가 가만히 서 있다가 움직인다. 물소는 누군가의 전생이며 동시에 소를 통해 자아와 자신의 기원과 대면할 수 있다는 십우도의 사상을 겹쳐 놓는다.

분미는 처제인 젠, 조카인 통과 함께 농장으로 간다. 그들이 식사를 할 때 불쑥 분미의 아내이자 젠의 언니인 후아이의 유령이 식탁에 앉아있다. 후아이는 40대의 모습으로 세월이 흐르는 이승에 사는 남편과 동생 앞에 나타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분미는 유령인 아내를 잠깐 여행을 다녀온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한다. 분미와 후아이가 대화를 나눌 때 집 나간 지 오래된 아들 분쏭이 원숭이 정령이 되어 계단으로 올라온다. 아피찻퐁 영화는 현재와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는 기존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유령과 인간이 대화를 나누고 원숭이 정령이 나타나서 한 자리에 배치된다. 카메라는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많은 대상을 인간처럼 대하고 전생과 현생을 함께 받아들인다. 윤회는 영화의 주제이자 서사를 펼쳐가는 내면적 인과성을 유지시켜주는 견고한 버팀목이다.

분쏭은 사진 속의 원숭이 정령을 찾아서 숲속을 헤매다가 원숭이 정령과 짝짓기를 한 후 강을 건너 가 이전의 기억이 다 지워졌다고 전한다. 강은 일종의 망각의 강이며 이승에서 저승 혹은 이곳의 세계에서 저곳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과제의의 관문이다.

분미는 병이 자신의 업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태국불교의 사유는 분미의 사고나 행동과 차이가 없다. 분미는 살생을 너무 많이 해서 자신이 병들었다고 처제 젠에게 말한다. 그는 농장에서 벌레를 죽이고 전쟁터에서 공산주의자를 많이 죽여서 병을 얻었다고 참회한다. 젠은 나라를 위해서 죽인 것이며 정당한 살생이었다고 분미에게 심리적 면죄부를 주지만 불교적 사유에 지배된 분미는 자신의 업보로 받아들이다.

에피소드로 공주의 행렬이 삽입된다. 공주는 가마를 타고 가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공주는 그림자가 환영이라고 말한다. 공주는 보석을 다 버리고 계곡 물 속으로 들어가서 메기와 대화를 나누고 그와 사랑을 나눈다. 공주와 메기의 사랑은 모든 생명체가 다른 생명으로 윤회하고 있다는 윤회의 입장에서 메기는 언젠가는 인간이었으며 공주도 메기인 적이 있을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종이지만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의 결실은 엉클 분미가 죽기 위해 찾은 동굴 속 우물에 물고기들로 다시 환생해 가족처럼 등장한다.

분미는 자신을 찾아온 아내의 유령과 껴안으면서 “내가 죽은 후에 당신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려한다. 분미는 아내의 유령과 처제 그리고 조카와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숲 속으로 접어든 일행은 거대한 동굴로 들어간다. 그 동굴 속에는 우물이 있고 작은 우물 안에 물고기가 있다. 분미는 “나는 전생에 이 동굴에서 태어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이 동굴에서 태어났으며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 동굴로 찾아온 것이다. 분미의 동굴 귀환은 신화적으로 자궁회귀이며 불교적으로 윤회의 바퀴를 돌리기 위한 것이다. 그를 안내한 이는 죽은 아내 후아이의 유령이고 분미를 배웅하는 이는 살아있는 젠과 통이다. 분미의 임종을 사이에 두고 저승으로 떠난 이와 이승에 사는 이가 마주한 것이다.

이정윤에 의하면 ‘태국불교는 윤회와 업을 강조하고 눈앞의 현생을 중시하여 스스로 공덕을 쌓고 선을 행하면 죄악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분미도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살생의 업보를 많이 자행했지만 살아가면서 공덕을 쌓고 다음 생을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 아내 후아이는 동굴에서 분미의 몸에 찬 복수를 빼고 임종을 돕는다. 다음 장면은 태국식 장례식으로 전환된다. 제는 장례를 마치고 부의금을 정산하고 출가한 통은 승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족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본다. 젠과 통은 모두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생령은 외출을 한다. 세 명이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 오른 편에서 통과 젠의 생령이 유체 이탈하여 숙소를 빠져나와 외출한다. 이 장면은 생령의 등장으로 문화와 종교의 맥락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다. 젠과 통의 생령은 밖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아피찻퐁은 우리는 전생의 생명체가 윤회하는 존재이며 원숭이의 생령도 인간의 생령도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해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한다는 불교적 사유를 영화에 녹여냈다. 불교의 윤회에 대한 영화적 표현은 현재와 실제를 중시하는 리얼리즘 영화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실제 인물은 허구(생령)로 만들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거짓 역량의 영화적 실천은 불교 사상의 영화적 수용이다. 불교 사상은 영화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확장하고 창의적인 영화 형식까지 도출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57호 / 2020년 10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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