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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작가미상 ‘참새무리’ 

기자명 손태호

가을의 풍요는 참새소리에서 시작된다

눈동자·숨구멍·깃털까지 50여 마리 참새 세세하게 묘사
기쁨 상징 까치와 한자 발음 비슷해 같은 뜻으로 쓰여
곡식과 연결돼 풍성한 가을 수확·풍요의 기쁨 담고 있어

작가미상, ‘참새무리(群雀圖)’ , 조선, 종이에 엷은 색, 138.8x57.6,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참새무리(群雀圖)’ , 조선, 종이에 엷은 색, 138.8x57.6,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일요일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도서관에 다녀오던 중 길 옆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논을 보았습니다. 경기도에 살다보니 도심 중심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큰 장점이자 즐거움입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떠올리면 논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허수아비가 생각납니다. 허수아비는 귀중한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 등을 쫓기 위해 세운 것인데 최근에는 허수아비를 보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 요즘은 허수아비 외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건지 아니면 참새로 인한 곡식 손실 정도는 괜찮다고 그냥 나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한창 벼가 익어가는 논을 보니 참새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여러 참새 그림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참새 그림을 홀로 감상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화폭 전체에 오십여 마리의 참새가 가득 그려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쪼는 참새들이 있고 중간에는 매달린 곡식을 쪼는 참새들, 공중에는 곡식으로 날아드는 참새들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참새들의 크기는 거의 동일하지만 아래쪽 참새들에 비해 위쪽 참새들이 날개를 펼치고 있어 상대적으로 커 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참새로 가득한 군도(群圖)의 특징이 더욱 드러납니다. 한 마리씩 자세히 보면 눈동자도 다 표현되어 있고, 숨구멍이 그려진 부리, 깃털 색의 변화 등 아주 섬세하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방향도 옆으로 이동하거나 양쪽 사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날개도 활짝 핀 경우와 반만 펼친 경우 등 다양하게 그렸습니다. 보통 이런 군도의 경우 여러 새를 그리다보면 같은 형태로 반복하여 단조로움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은 그런 매너리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줄기와 잎도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하였습니다. 참새들의 모습이 역동적이다 보니 비록 그림이지만 참새의 재잘거림이 화면 밖에서도 들릴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작품으로는 크기가 커 시원하며, 활기차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작품명이 ‘참새 무리’ 로 명명된 이 그림은 세로로 긴 형태의 족자형의 그림이지만 아마도 한 폭이 아니라 여러 폭으로 그려진 병풍 그림 중 한 폭일 것입니다. 아마 원래 그려진 대로 전체 그림을 감상한다면 온 들판과 하늘을 뒤덮은 참새들의 소리에 귀가 멍멍해졌을 것입니다. 참새들이 열심히 쪼고 있는 곡식은 노란색과 검은 색 두 가지인데 노란 색의 마치 포도 알갱이처럼 뭉쳐 있는 곡식은 조(粟)이고 검은 색 테두리의 작은 알갱이가 많이 붙어 있는 곡식은 수수(高梁)입니다. 두 곡식 모두 벼과 식물로 8월까지만 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다가 가을 9·10월이 되면 알갱이의 무게로 고개를 아래로 향합니다. 그림에서 모두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작가는 분명 가을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이 분명합니다. 

화가가 이렇게 많은 참새를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참새 작(雀)은 까치 작(舃)과 읽는 소리가 같습니다. 까치는 ‘기쁨(喜)’의 회화적 상징으로 대부분의 까치 그림은 ‘기쁨’을 의미하기에 참새도 ‘기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참새는 곡식과 연결되어 수확의 기쁨, 풍요의 기쁨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림처럼 수많은 참새가 날아오니 커다란 기쁨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중국 청나라에서도 ‘참새 무리’ 그림이 축복을 전해주는 그림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 문화적 감성을 조선의 선비들도 공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참새는 불교 설화에도 등장합니다. 석존께서 사밧티국의 기원정사에서 설법하실 때 일입니다. 사자왕(獅子王)이 코끼리를 죽이고 그 고기를 먹다가 코끼리의 뼈가 목구멍에 걸려 숨이 막혀서 죽게 되었을 때 나무위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있던 참새를 발견하였습니다. “내 목구멍에 걸려있는 뼈다귀를 꺼내다오. 그 대신 이번에 먹을 것이 생기면 네게도 줄 테니까” 참새는 나무에서 내려와 사자왕의 입 속으로 들어가서 온 힘을 다 하여 그 뼈를 뽑아 주어 사자왕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며칠 후 사자왕이 많은 먹이를 얻은 것을 알게 된 참새는 사자왕을 찾아가 먹을 것을 조금만 나누어 달라고 했지만 “내 입에 들어 왔다가 목숨이 붙어있는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라”며 조롱하고 음식도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참새는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하였습니다. 얼마 후 사자왕은 동물을 잡아먹고 실컷 배가 불러서 나무 밑에 곤히 잠이 들었는데 나무위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참새가 힘껏 사자왕의 한 쪽 눈을 쪼아 실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크게 놀라 울부짖는 사자왕에게 “생명의 은혜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원수로 대하는 너. 한 쪽 눈만은 남겨 놓았으니 이 은혜를 잊지 말아라. 짐승의 왕이라고 뽐내면서 은공을 모르는 너 따위에게 이 이상 할 말은 없다. 이젠 이것으로 작별이다”라고 말한 후 참새는 어디로인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제11장에 나오는 우화로 참새는 인과응보의 심판자로 짐승의 왕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용기 있는 새로 등장합니다.

가을입니다. 비록 농부가 아니라 해도 우리 모두 한해 고생하고 노력한 성과를 알차게 수확해야할 시기입니다. ‘참새 무리’의 참새들 재잘거림을 통해 가을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와 수수처럼 독자분 모두 한해 고생한 성과가 주렁주렁 매달리기는 풍년이길 기원 드립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57호 / 2020년 10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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