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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낙태법 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0.10.20 15:24
  • 호수 1558
  • 댓글 2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진원 스님 기고 전문

임신 14주까지 낙태 허용 예고
세계보건기구 등 권고와는 역행
모든 법적 책임 여성에게 전가
그렇더라도 불교서 낙태는 살생
불교계, ‘과보’ 막는데 앞장 서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정에 따라 정부는 10월7일 형법‧모자보건법개정입법예고안을 냈다.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통해 임신 14주까지의 낙태에 대해 허용하는 형법 개정안이다. 기존의 법에서는 성폭력을 제외한 모든 낙태가 불법으로 처벌받아야 했다면, 이번 개정되는 법은 임신 14주까지의 임신 중절을 임산부 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한다. 15주 1주차부터 24주차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로 보고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의무로 한다. 아울러 자연유산 유도약물을 허용 도입하며,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인공 임신중절 진료거부도 허용한다는 중요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세계보건기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세계산부인과학회 등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경제적 규제조치 및 처벌조항을 전면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즉 낙태에 대한 처벌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불교는 낙태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여성이 국가나 종교적인 간섭 없이도 스스로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불교의 생명사상에 의거해 임신 중에 있는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도 아니면 그냥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개인에게 책임을 맡겨 둘 것인가.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들이 아니어서 지웠다”거나 “원하지 않은 임신이어서 지웠다” 등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하던 낙태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충격이었나 보다.

출가자로서 영가천도 때마다 낙태당한 태아영가를 의무감처럼 천도기도를 했다. 부디 다음 생에는 강제로 낙태당하지 말고 태어날 권리를 얻기를 발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성권익 현장에서 받은 충격은 어린 시절 아이를 지웠다는 충격과 다를 바 없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 또는 피임도구를 쓰지 못해서, 아이를 가질 준비 없이 임신하고, 성폭력으로 임신하기도 하는 등 여성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임신이 된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낙태하고 싶지만 남자친구로부터 불법낙태에 대한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성폭력으로 또는 피임을 미처 못한 상태에서 임신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임신한 후 낙태하고자 병원을 찾더라도 불법인데다가 의사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임신된 생명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나 환영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는 미혼모라는 한부모의 취약계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생명을 지울 수 없어서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대부분 보육원에 위탁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출산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나 시간제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다. 겨우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운이 좋으면 최저시급을 받겠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노동여건도 안되고 사회적 시선도 곱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렇게 모든 책임이 여성 개인에게 편중되어 있다.

정부 정책도 곱게 보기는 어렵다. 냉엄하게 보면 정부는 태어나는 아이의 생명이 존엄해서가 아니라 그때그때 정책에 따라 낙태는 선택되었다. 건국초기에는 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 전쟁을 치룬 이후에는 빈곤 탈출을 위해 하나만 낳는 정책으로 피임과 낙태를 이용했다. 지금은 인구가 줄어들어 인구증가 정책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정책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생명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단호하다. 불교의 근본정신에 비춰보면 태어나는 아이는 그 누구라도, 설사 그게 임산부이든 아니면 의사든 그 어떤 정책이든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 생명은 어떤 경우라도 보호돼야 한다. 생명은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 하는 비교치가 되어서는 결단코 안 된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존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불교계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되 이후 여성과 아이가 이 혼탁한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동체대비의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갈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한부모 정책을 필두로 원하지 않은 임신이 되지 않게 피임 등의 교육을 폭넓게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피임에 대한 명확한 이해만 있어도 애꿎은 살생의 과보에서 상당수 벗어날 수 있다.

진원 스님
진원 스님

생명에 대한 경시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돌아온다. 불교계가 그 과보를 막는 데 앞장서야 하는 것은 시대적인 요청이자 의무다.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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