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제38칙 풍혈황룡
39. 제38칙 풍혈황룡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0.10.27 09:38
  • 호수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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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삼경도 밝힐 사제 간 의기투합

자연 法爾 담은 ‘풍혈’ 답변에
‘황룡’은 ‘알겠다’는 한 마디만
스승과 제자 간에 마음 통하면
가르침에 큰 목소리 필요 없어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2)가 처음으로 황룡(黃龍)에 도착했다. 황룡이 물었다. “석각(石角)으로 가는 길은 구름 속으로 나 있는데, 드리워진 칡덩굴 줄기의 뜻은 어떠한가.” 풍혈이 말했다. “붉은 노을 속에는 옥코끼리가 담겨 있고, 높은 산봉우리는 흐르는 물에 어려비췹니다.” 황룡이 말했다. “알겠다.” 풍혈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소리를 낮추십시오.”

풍혈은 순덕대사 경청에게 참문하여 주장자에 대한 문답을 통하여 뛰어난 납자라는 찬탄을 받았다. 자신감이 생긴 풍혈은 바로 이어서 황룡으로 가자, 황룡이 물었다. ‘석각으로 가는 길은 구름 속으로 뚫려 있는데 드리워진 칡덩굴 줄기의 뜻은 어떤가.’ 풍혈이 ‘붉은 노을 속에는 옥코끼리가 담겨 있고, 높은 산봉우리는 흐르는 물에 어려비췹니다.’고 답변한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황룡이 이미 이렇게 질문했기 때문에 풍혈은 반드시 그렇게 답변을 했어야 했다는 것을.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용을 붙잡을 수 있겠고, 맨손으로 호랑이와 물소를 붙잡을 수 있는 기개를 발휘하겠는가.

풍혈의 답변에 대하여 “알겠다.”고 응수한 황룡의 말 또한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다. 가히 사제지간에 보이는 의기투합(意氣投合)이다. 때문에 풍혈은 다시 황룡에게 반드시 소리를 낮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의기투합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을 굳이 다그칠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더라도 서로 알아차리고 그에 상응하여 합당한 행동을 갖추게 된다. 풍혈과 경청은 이미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경지가 되었다. 이에 경청은 풍혈의 답변에 대하여 단지 ‘알았다’고만 코멘트했을 뿐이다. 거창하게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명경이 경대에 높이 걸려있으면 사물이 오는 대로 죄다 비추어주고, 대종이 종루에 높이 걸려있어 크게 때리면 크게 울리고 작게 때리면 작게 울리는 이치와 같다. 곧 때리는 대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치야말로 작용에 따른 결과로 조금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줄을 알아야 한다. 그 스승에 그 그 제자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라고 해서 반드시 의기투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 스승은 가차없이 제자를 내치고 만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인연이 닿는 곳을 찾도록 배려해준다. 일찍이 영가현각이 말했다. ‘중생은 자신의 마니주를 알아보지 못한다. 여래장에 본래부터 다 구비되어 있어서 여섯 가지 신통묘용 공이면서 불공이고, 마니주는 원만한 광채의 색이면서 무색이다.’ 이에 대하여 일찍이 종남산 운제 사조선사가 남전에게 물었다. “이미 여래장 가운데 온갖 것이 갖추어져 있다면 도대체 여래장이란 어떤 것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내가 그대와 함께 왕래하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조가 물었다. “그렇다면 왕래하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그 또한 역시 여래장이다.” 사조가 말했다. “그러면 마니주란 또 어떤 것입니까.” 남전이 사조를 부르자, 사조가 ‘예.’ 하고 대답하였다. 남전이 말했다. “가거라. 그대는 내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여기에서 마니주라든가 여래장이라는 개념에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단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니주와 여래장의 개념은 일상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말이다. 그것은 숨기려고 해도 더욱 드러나지만 드러내려고 하면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일토록 그것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지만 어떤 때는 바로 제일 가까운 자기한테서 발견되는 법이다. 그런데 하필 야반삼경까지 굳이 수고할 필요가 있겠는가. 마니주와 여래장은 동일한 의미이다. 따라서 석각으로 가는 길에 칡덩굴이 우거져 있는 모습은 산길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붉은 노을 속에서 마치 옥코끼리가 담겨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높은 산봉우리가 흘러가는 물 위에 어려비치는 것은 자연의 법이(法爾)이다. 때문에 풍혈은 ‘화상께서는 소리를 낮추십시오.’고 말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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