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고(苦)의 세계관인 삼법인을 재확인한 것이 용수의 중도관이며, 용수는 ‘중론’ 관사제품에서 중도와 사성제를 연결하여 강설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붓다는 처음부터 사성제와 중도를 연결 지어 설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가 불교진리를 이해하는 인식론적 틀로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붓다와 용수를 일관하여 사성제가 삼법인 내지 중도에 기반해 있는 까닭에서다.
어떤 언설이 불교적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세계관적 기준이 삼법인이라면, 고(괴로움)-집(괴로움의 집기(集起))-멸(괴로움의 소멸)-도(괴로움의 소멸의 방도(方道))의 사성제는 불교가 지향하는 완전한 행복에 당도(當到)하는 인식론적 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성제는 그 당도의 수행론인 팔정도까지 내포하고 있어 불교진리를 표상하기도 한다. 모든 법이 사성제에 포섭된다는 ‘중아함경’ 제7권 ‘상적유경’의 말씀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붓다를 모시고 사리자가 한 해당 언설을 보기로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비록 한량없는 선법이 있더라도 그 모든 법은 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포섭되는 것으로서(若有無量善法 彼一切法 皆四聖諦所攝),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안으로 들어오는 까닭에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모든 법 가운데 제일이라고 합니다(來入四聖諦中 謂四聖諦於一切法最爲第一). 왜냐하면 모든 뭇 선법을 다 포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所以者何 攝受一切衆善法故).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모든 짐승의 발자국 중에 코끼리의 발자국이 제일 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저 코끼리 발자국이 가장 넓고 크기 때문입니다.”
사성제가 고(괴로움)의 공성 내지 중도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괴로움의 집기-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의 방도 또한 이를 벗어나 전개될 수 없다. 괴로움을 고성제(苦聖諦,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라 한 것은 괴로움의 중도성(공성)을 직시하였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괴로움 내지 괴로움과 직결된 지수화풍의 사대를 무상한 법과 다함이 있는 법과 쇠하는 법과 변하는 법(是無常法盡法衰法變易之法, ‘중아함경’7 ‘상적유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팔고의 무상함, 특히 팔고 중의 오음성고(五陰盛苦)의 무상함은 괴로움의 공성(중도성)을 잘 나타낸다. “내가 받는 이 괴로움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인연이 되는가? 고갱락(苦更樂, 苦觸을 말함)이 인연이 된다. 이 갱락[觸]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覺, 受를 말함) 상(想) 행(行) 식(識)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마음은 경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중아함경’7 ‘상적유경’)”고 부연하고 있으며, 낙갱락(樂更樂, 樂觸을 말함)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와 취지로 설하고 있다.
고와 낙의 양극단을 중도변증법으로 통일하는 인식의 지평 위에서 집성제와 멸성제도 설해진다. 조건 지어진 갈애와 삼독에서 괴로움이 집기하였기에, 괴로움의 소멸은 조건 지어진 갈애와 삼독을 중도의 자리에 들게 하여 그 공성을 관찰하는 것으로 성취된다. 나아가 도성제는 이 중도의 자리에 드는 수행의 방도가 다름 아닌 팔정도임을 밝힌 것이다. ‘중아함경’ 제7권 ‘대구치라경’에서는 아래와 같이 고갱락과 낙갱락 외에 삼갱락(三更樂)의 나머지 하나인 불고불락갱락(不苦不樂更樂)까지를 포괄하여 팔정도와 연결 짓는다.
“이른바 삼갱락이 있으니 낙갱락과 고갱락과 불고불락갱락인데, 이를 아는 것을 갱락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어떤 것을 갱락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까? 이른바 팔지성도(八支聖道)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갱락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중아함경’ 제7권 ‘분별성제경’은 도성제의 팔정도로 정견, 정지, 정어, 정업(바른 행위), 정명(바른 생활), 정방편, 정념(바른 새김), 정정을 들고 있다. 정지는 정사유(正思惟)에, 정방편은 정정진(正精進)에 준한 표현이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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