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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유희강의 ‘완당정게': 추사와 검여의 만남

기자명 주수완

추사의 정신을 흠모한 검여의 예술감각

저자거리나 불도나 다르지 않다는 추사의 마음을 시각화
다양한 불교 가르침과 종파들이 걸어온 역사적 길을 암시
료(鬧)상태지만 질서정연하게 ‘아미타불' 향해 앉은 듯

추사의 ‘정게증초의사'를 검여 유희강이 쓴 ‘완당정게’, 1965년, 64×43㎝.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추사는 초의 선사와 차 이야기만 나눈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불교에 깊이 정통하여 조선시대 대표적인 불교 논쟁인 백파 긍선과 초의 의순의 삼종선·이종선 논쟁에도 뛰어들어 초의를 거들었을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제천송금강경후(題川頌金剛經後)' ‘제불설사십이장경후(題佛說四十二章經後)' ‘백파상찬병서(白坡像贊竝序)'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 ‘제인악영(題仁嶽影)' ‘오석산화암사상량문(烏石山華巖寺上樑文)' ‘가야산해인사중건상량문(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門)'  ‘서시백파(書示白坡)' ‘작백파비면자서증기문도(作白坡碑面字書贈其門徒)' ‘안게증제월사(眼偈贈霽月師)'와 같은 많은 불교관계 글을 남겨 불교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그의 ‘천축고(天竺攷)'는 비록 인도에 다녀올 수는 없었지만, 금석학자의 탐구정신으로 인도에 대한 정보와 불교경전의 번역상의 문제들을 학자적인 지혜로 풀어보려고 했던 저작이다. 더하여 ‘산사(山寺)' ‘수락산사(水落山寺)' ‘부왕사(扶旺寺)' ‘관음사(觀音寺)' ‘화암사에서 돌아오는 길에(華巖寺歸路)' 등 다양한 불교시를 남겨 이성적인것 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그야말로 불교를 사랑한 예술가였음을 밝혔다. 또한 반야심경을 필사하는 것으로 사경공덕을 삼았고, 말년에는 봉은사에 머물며 발우공양하고 자화참회(刺火懺悔)하며 수행하였다고 하니 비록 그 스스로 유자임을 강조했다고는 하나, 불자에 다름없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그런 그가 쓴 시, 아니 정식으로 게송이라 부를 수 있는 ‘정게증초의사(靜偈贈草依師)' 즉, ‘게송을 지어 초의선사에게 부치다’ 정도의 뜻을 지닌 그의 글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南无阿彌陀佛 나무아미타불
儞心靜時 雖闤亦山 그대 마음 고요할 땐 저자거리도 산이지만
儞心鬧時 雖山亦闤 그대 마음 흐트러지면 산도 곧 저자거리
只於心上 闤山自分 그저 마음이 저자거리와 산을 구분할 뿐이니
瓶去針來 何庸紛紛 병이 가면 바늘이 오는 것에 어찌 그리 어수선한가
儞求靜時 儞心已鬧 고요함을 구하고 있다면 그대 마음은 이미 흐트러진 탓
玄覺妙筌 忘山殉道 깨달음의 이치란 산을 버리고 도를 따르는 것
儞言闤闠 不如山中 그대는 저자거리가 산중 보다 못하다 했으나
山中鬧時 又將何從 산속마저 어지러워지면 장차 어디로 가시려는가
儞處闤闠 作山中觀 그대 저자거리에 머물며 그곳이 산이라 생각하면
靑松在左 白雲起前 왼편에 푸른 소나무 앞에는 흰구름 일어나리라

선운사에 있는 ‘화엄종주백파대율사비’ 비문. 추사는 백사선사의 생전에는 그의 주장에 비판을 가하였으나, 입적후에는 각별한 존경을 담아 이 비문을 썼다.

아마도 그가 모범으로 삼았을 유마거사처럼 저자거리에서 사람들 속에 뒤섞여 있어도 마음은 출가한 승려처럼 고요하게 살아야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한편의 시로 노래한 것이다. 수행을 위해 산을 찾겠다는 마음부터가 이미 더럽고 깨끗한 것을 구분짓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산이 되는 것, 그러니까 평상심시도가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이러한 그의 생각은 삼종선·이종선 논쟁에서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파 긍선 스님의 삼종선은 깨달음의 종류를 의리선, 여래선, 조사선의 셋으로 나눈 것이고, 이에 반해 초의선사와 추사는 깨달음에는 굳이 그러한 구분이 없지만, 굳이 나눈다면 그러한 구분을 두려고 하는 여래선과 그러한 구분을 두지 않는 조사선의 두 종류가 있음을 주장한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백파 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였기 때문에 삼종선은 깨달음을 얻기 전의 사법계(事法界)에서 깨달음의 초보 단계인 이법계(里法界)를 시작으로 여기서 더 나아간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그리고 궁극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로 나아가는 것을 각각 의리·여래·조사선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의와 추사는 보다 선종의 근원적 입장에서 교학적인 깨달음은 배제하고 다만 여래선을 북종선, 조사선을 남종선에 대비하여 그 중에서도 혜능의 가르침을 계승한 남종선의 조사선이 가장 경계의 구분이 없고, 깨달음과 깨달음 아닌 것의 구분마저 없는 진정한 깨달음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아마도 추사의 이 게송은 깨달음과 깨달음이 아닌 것의 구분을 마치 산과 저자거리에 비유하여 그 둘의 구분마저 없어야 한다고 읊은 셈이다.

그런데 이 멋진 시를 추사가 지난번 대흥사 ‘무량수각' 현판처럼 글씨로 시각화시켜 남겨두었더라면 더 큰 감동이었을 것 같은데, 아마도 초의선사에게 써서 보냈을 것 같은 그의 필적은 아쉽게도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의 ‘동파진적' 전시회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필적을 만났다. 바로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鋼, 1911~1976)의 ‘완당정계(阮堂靜偈)'를 만난 것이다. 마치 추사가 살아있었다면 썼을 것 같은 그런 필적의 글씨를 쫓아가면서 검여가 얼마나 추사의 정신을 흠모하고 다가가려고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검여의 글씨를 보자. 첫 인상을 보면 매우 혼란스럽다. 그야말로 추사의 게송에 등장하는 ‘료(鬧)’의 상태다. 저자거리에 사람들이 왁자지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버티고 있는 나무아미타불이 화면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것이 산인 것 같다. 그래서 위는 좁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져서 위로 높이 솟구치는 방향성이 느껴진다. 만약 이 나무아미타불이 같은 크기로 쓰여졌다면 매우 심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처럼 크기를 달리하여 어떻게 보면 원근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독특한 매력이다. 저자거리 시장 사이로 난 길처럼도 보인다. 이 길이나 불도의 길이나 다르지 않다는 추사의 마음을 이렇게 시각화한 것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맨 아래 ‘불(佛)’자만 크게 강조되었다. 북종이든, 남종이든, 그리고 삼종선이든, 궁극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마치 그 위의 남, 무, 아… 와 같은 글자들은 다양한 불교의 가르침과 종파들이 걸어온 역사적인 길을 암시하는 듯한데, 궁극은 바로 눈앞에 버티고 있는 ‘불’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불이 중심을 잡아주고 나니 저자거리였던 곳이 다시금 극락세계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저자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이던 글자들은 이제 어떻게 보면 연꽃 위에 왕생한 사람들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있게 중앙의 ‘아미타불’을 향해 돌아앉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무질서한 듯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모습은 그야말로 산과 저자거리의 극명한 대비를 절묘하게 시각화한 검여의 예술감각이라고 칭송할 수 밖에 없다. 추사의 예술혼이 잠시 검여의 팔을 빌렸던 것일까?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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