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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고 통해야 산다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유행가의 절규가 아프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세상이다. 오래도록 유행하고 있는 전염병이 주는 상실과 고통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겪는 보다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은 통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동의보감’ 역시 “고통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고 적시하고 있다. 혈류가 흐르지 않으면 갖가지 병이 생기는 것처럼, 물류의 불통이 궁핍과 불편을 초래하고, 고용시장의 불통이 청년실업과 조직의 경직성을 야기하며, 인간적인 교감과 소통 부재가 불신과 갈등을 조장한다.

패망한 월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계연은 경제가 곧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라 밝히고 경제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재물과 화폐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유통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장에 적절한 가격의 물건이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이치임을 역설했다. 최근 주택을 사거나 임대하려는 사람들이 값이 너무 비싸거나 물건이 없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따라서 주택이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제나라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부흥시킨 관중은 부자가 무덤을 호화스럽게 꾸미는 등의 소비를 적극 장려했다. 그래야 토공이나 화공 등이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돈이 부자의 곳간에 머물지 않고 유통되고 나누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금하고 막는 통제는 최소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유통하게 하는 방향에서의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자리 부족은 청년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생계의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 왜 일자리가 부족하게 되는 것일까?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사람을 새로 채용하기 꺼리기 때문이다. 이는 해고를 심하게 통제하는 데서 오는 흐름의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불안정한 처지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경직된 고용 원칙들을 도입한 결과 많은 강사들이 설 자리조차 잃게 되었다. 사업이 잘 되는데도 직원을 더 뽑아 확장하기를 꺼리는 것은 경기가 나빠졌을 때 해고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약자를 돌보는 것은 국가가 복지의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조직의 운용을 통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면 조직은 더욱 경직되고 움츠리게 되어 그 부작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교사와 학부모간의 교류와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폭력과 성추행 등의 부작용과 뇌물의 수수로 인한 불공정을 염려한 나머지 인간에 대한 불신을 바탕에 깔고 상호간의 접촉 자체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백안시하기 때문이다. 진솔하게 정보와 생각을 나누거나 인간적인 교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의 기회도 없는데 어떻게 사랑과 교육이 가능할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속담처럼 부작용을 없애려다 교육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자’에는 신이 이목구비가 제멋대로 붙어 혼돈스럽게 생긴 사람을 좋은 마음으로 질서 있게 성형해 주려다가 생명을 잃게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나름 자연스럽게 생명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 공연히 외과수술적인 개입을 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불교에서도 깨달은 도인의 모습을 감정을 차단하고 요지부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물류의 흐름·고용의 흐름·인간적인 교류 등 모든 흐름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의 방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비정상적으로 흐름이 막히거나 왜곡되었을 때 조심스럽게 최소한의 개입으로 둑을 쌓아 흐름을 조절하면 될 일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고 통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방역을 위해서 임시로 공간을 격리하고 단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경제와 고용이 흐르지 못하고 인간적인 교류가 막힘으로써 비롯되는 고통은 없어야겠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yunjai@seoultech.ac.kr

 

[1559호 / 2020년 11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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