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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2006)

데칼코마니 형식 두 이야기로 업보·윤회 담아

업은 시기적 차이 있지만 현생·내세·차후생에 과보 받아
노스님, 유년시절 닭다리 부러뜨린 악행으로 불면증 호소
가금류 섭취는 살생과 연관돼 공황장애라는 업보로 반복

영화 ‘징후와 세기'는 전형적인 불교식 인과응보를 보여준다. 사진은 영화 ‘징후와 세기’ 스틸컷.

영화 ‘징후와 세기’는 남녀 사랑이야기가 전반부·후반부에 서로 겹치는 데칼코마니 형식이 돋보인다. 불교 영화의 눈으로 바라보면 전반부와 후반부는 윤회와 업보에 대한 서사가 마지막 장면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실내의 풍경과 음악처럼 또렷하다. 

전반부는 시골 병원의 여의사와 그녀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이야기가 멜로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아피찻퐁이 선형적인 멜로 영화에 집중할 감독은 아니며 후반부에 이를 입증하듯이 의사를 인터뷰하는 장면의 앵글이 정반대로 바뀌어 차이와 반복의 형식이 두드러진다. 두 이야기의 겹침과 치과의사와 젊은 스님 사크다의 대화 그리고 복도에서 의사와 환자의 대화에서 전생과 현생에 대한 윤회가 영화 속에서 자신의 과거사를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 

업보와 윤회는 태국의 불교적 분위기를 담은 아피찻퐁의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카메라는 움직임으로 석불 풍경을 포착하고 불교적 분위기와 전생과 현생의 도도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 

업은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 마음으로 짓는 업이 있다. 스님은 닭에게 가해를 하였으니 몸으로 업을 지어서 꿈을 통해 마음의 가책과 같은 자기 징벌이라는 방식으로 과보(果報)를 받고 있다. 과보는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거나 현생에 짓고 내세에 받거나 현생에 짓고 차후생에 받는다. 과보의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영화 속에서 노스님은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고 있는 것이다. 치과의사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는 죽은 동생에게 용서받기 위해서 환생한 동생으로 생각한 승려 사크다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지만 거부 당한다. 치과의사는 자신이 녹음한 음반을 사크다에게 선물하면서 과보의 일부나마 사하려고 한다. 선물은 자신의 업보를 변제하려는 의미도 있지만 사크다에 대한 마음의 표시이기도 한다. 치과의사가 불렀던 노래는 이에 대한 노래에서 사랑에 대한 노래로 바뀌었으며 사랑의 대상은 이성이기도 하지만 사크다일 수도 있다. 

‘징후와 세기’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서로 겹쳐진 데칼코마니 구조를 보이지만 불교 영화적으로 보면 전생과 후생이라는 윤회의 서사에 가깝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차이와 반복을 통한 윤회의 서사로 읽을 수도 있다. 전반부에 시골 병원의 여의사가 면접을 보면서 질문을 한다. 답을 하는 남자가 클로즈업으로 등장하고 후반부는 반대로 질문하는 여의사가 클로즈업으로 프레임에 등장해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응시자는 스크린 밖의 소리로 대답한다. 클로즈업과 오프 스크린 사운드는 반복되지만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이를 프레임에 넣는 것은 서로 뒤 바뀌어 차이가 생긴다. 여의사 테이는 정원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로부터 ‘사랑에 빠진 적 있느냐’는 직설적인 질문과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라는 항변에 가까운 애정 고백을 받는다. 하지만 테이는 웃으면서 그녀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인 눔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 여성은 다른 남자를 떠올리면서 감정이 빗나간다. 야생난으로 인해 테이와 눔은 만나게 되고 서로 인연이 이어진다. 테이는 눔의 농장으로 찾아가고 그의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눔에 대한 감정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눔은 테이에게 ‘당신이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대해 변죽을 울린다. 테이는 농부와 스님의 이야기를 숲 속에서 듣는다. 이 이야기는 불교에서 미혹에 빠지게 하는 탐진치(貪瞋痴) 중에서 과욕으로 인해 업을 짓는 탐에 대한 서사다. 농부와 스님의 이야기는 아피찻퐁의 ‘열대병’에서도 등장한다. 두 농부가 스님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묻자 호수로 가라는 말을 한다. 두 농부는 호수에서 금과 은을 발견하고 주머니 가득 들고 오지만 과욕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다는 감시와 응시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노스님이 진료실에서 테이와 다른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전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 등장해 겹쳐진다. 전반부에서 노스님은 테이에게 불면증을 호소한다. 노스님은 꿈에서 닭 떼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이는 유년 시절에 닭다리를 부러뜨렸던 과오로 인해 꿈에 나타난 것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어린 시절 닭에게 자행했던 악행이 현생에 꿈을 통해 귀환하여 과보를 받는 것이다. 스님은 흥미롭게도 닭다리를 부러뜨린 악행에 걸맞게 무릎 관절이 아프다고 한다. 전형적인 불교식 인과응보에 가깝다. 테이는 가금류를 많이 섭취해 요산으로 인해 관절이 아픈 것으로 과학적 진단을 하지만 스님은 유년시절의 업보로 인해 노년에 관절이 아픈 것으로 확신한다. 후반부에서는 스님이 정면으로 의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스님은 닭으로 인해 불면을 호소하는 반복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의사는 가금류의 과다섭취로 인해 콜레스테롤이 많아졌다고 진단한다. 가금류의 섭취는 살생과 연관돼 공황장애라는 병을 얻게 된 업보의 반복이다. 

아피찻퐁은 일상적 삶과 우주적 신비를 아우르는 환상과 현실의 영토 확장을 꾀한다. 그의 영화는 불교적 세계가 체화되어 현생과 전생의 서사적 겹침으로 형식적 실험성을 강화한다. 실험적 형식은 불교적 세계와 서로 연동되지만 형식적 전위 보다는 불교 분위기의 영화적 체화에 기운다. 영화 형식과 불교 세계의 융합은 영화 세계의 확장과 태국 불교의 깊이를 견인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59호 / 2020년 11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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