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상조사가 한국불교에 주는 교훈

기자명 이병두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의상(義湘)조사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을 겸하여 어느 한 분야에서도 소홀하거나 취약한 곳이 없었다. 그는 방대한 ‘화엄경’의 내용을 ‘7언(言) 30구(句), 총 210자의 법성게(法性偈)’로 요약 정리해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학승이었다. 그의 명성은 당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널리 퍼져 있어서, 중국 화엄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던 현수 법장(賢首法藏)이 새로 소(疏)를 찬술한 뒤 사본과 함께 “옳고 그른 것을 상세히 검토하여 가르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 옛 일들을 잊지 마시고 어느 업의 세계에 있든지 간에 바른 길을 보이시고, 인편과 서신이 있을 때마다 생사를 물어주시기 바랍니다”는 간절한 편지를 조사에게 보내 자신의 저술을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달라고 부탁하였다.(‘삼국유사 의해-의상전교’)

조사는 또한 경북 영주 부석사 등 이른바 ‘화엄십찰’이라 불리는 큰 사찰을 창건하여 사판승으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증명해주었으며, 문무왕을 비롯한 신라왕과 귀족들이 어려운 일이나 나라의 큰일을 앞둘 때마다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스승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무왕 21(681)년에 왕이 왕경[경주]에 성을 새로 쌓으려고 조사의 의견을 묻자 “비록 들판의 띠 집에 살아도 바른 도를 행하면 곧 복업(福業)이 길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비록 사람을 힘들게 하여 성을 만들지라도 또한 이익 되는 바가 없다”(‘삼국사기-신라본기’)며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하여 공사를 그만두게 한 적도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종교와 정치권력은, ‘좋았다’와 ‘나빴다’ 사이를 오가면서 늘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얼핏 보면 이차돈의 순교에 이은 공인(公認) 이후 신라가 마치 완벽한 불교국가였던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문무왕의 경우에도, 즉위 4(664)년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재물과 토지를 절에 시주하는 것을 금지”하여 불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가하면 16(676)년에는 의상조사에게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도록” 지원하고(‘삼국사기-신라본기’), 조사가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강설하면서 교화하고 있을 때에는 “전장(田莊)과 재물·노비를 시주하겠다”고 하는 등 우호 관계를 이어갔다.

큰 흐름으로 보아 신라는 불법의 경지가 높은 고승들을 국통(國統)·국사(國師) 등으로 초빙하여 왕실과 나라의 스승으로 모시고 부석사 뿐 아니라 황룡사·불국사·석굴암·사천왕사·감은사·영흥사·황복사 등 대규모 사찰 창건을 주도하거나 거액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불교에 대한 관리와 통제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지만, 교단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재력가의 지원을 받게 되고 여야 정치권과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들의 불법(佛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함께 균등하고 귀하고 천함이 같은 도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는 여덟 가지 부정한 재물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전장이 필요하고, 어찌 노복을 거느리겠습니까? 빈도(貧道)는 법계(法界)로써 집을 삼고 바릿대로 농사지어 익기를 기다립니다. 법신(法身)의 혜명(慧命)이 이를 의지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송고승전-신라국의상전’)라며, 왕의 시주 의사를 ‘의연하면서도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거절하며 최고 권력자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려는 국책사업에 분명한 반대 의견을 밝힌 조사의 말에 그 답이 있다고 본다.

정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권력은 ‘법계(法界)로 집을 삼고 옷 한 벌과 발우 하나[一衣一鉢]로 자족하는 수행자’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