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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총무원 사업부장 주혜 스님

삼보에 귀의할 때의 첫 마음만 잘 지켜도 부끄럽지 않은 불자

처음 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 잃지 않는 것이 곧 수행
마음이 수시로 변한다면 타인에게도 신뢰 얻기 힘들어
부처님 가르침 실천한다면 악행·악업에 물들지 않아

오늘 법문 주제는 삼귀의와 초발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아주 익숙한 단어일 것입니다. 삼귀의는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고 초발심은 어떤 일을 시작하는 처음의 다짐입니다. 특히 삼귀의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으로, 이 삼귀의가 없으면 불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삼귀의입니다.

부처님께서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게 사성제를 설하시며 초전법륜을 하신 이후 부처님 법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오라, 비구여!”하며 환영 하셨습니다. 정법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환영했고, 그 모든 사람은 반드시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 계를 수지하였습니다. 삼귀의 계를 수지하여야 불자인 것이고, 비로소 부처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불교행사의 시작을 삼귀의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을 먼저 다지고 나서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라, 비구여!”하셨던 부처님 말씀은 “오라, 불자여!”와 같은 것입니다.   

초발심도 매우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 혹은 어떤 상황을 맞으면서 처음 내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죠. 여러분들이 업무를 할 때도 처음에 아주 신명 나게 시작하면 일이 잘되지만, 처음부터 귀찮게 여기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일은 잘되지 않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의 길이 이미 그 일의 중간과 끝을 어느 정도 결정한다고 봐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느냐에 따라 종착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수십 년 전에 해인사 행자실에 한 행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행자들과 함께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는데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행자들은 ‘계초심학인문’을 마치고 ‘발심수행장’ ‘자경문’으로 진도가 쭉쭉 나가는데, 그 행자만은 첫 줄을 외우는 데만, 몇 달이 걸려도 안 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들 그 행자를 ‘우둔행자’라 불렀답니다. 머리가 우둔한 사람이라고 대놓고 별명으로 놀려준 것이죠.

어느 날 큰스님이 행자들을 모아놓고 ‘초발심자경문’ 공부한 것을 점검했다고 합니다. 행자들은 저마다 아는 대로 이야기를 하고 질문에 대답도 하였겠죠? 마침내 우둔행자의 차례가 되어서 “넌 무엇을 공부했느냐?”하고 물으니 “초심 두 글자 뿐 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초발심자경문’의 첫 대목인 ‘계초심학인문’이 ‘부초심지인은…’으로 시작하니까 결국 우둔 행자는 앞의 초심 두 글자만 공부했다는 것이죠. 큰 스님이 “그래? 그럼 초심이 뭐냐?”고 다시 물으니 그때부터 우둔행자가 설명을 하는데 둑이 터져서 물이 쏟아져 흐르듯 막힘없이 술술 설법을 하더랍니다. 그 설법에는 팔만대장경의 온갖 도리가 다 들어가 있고 일체 경전의 이치가 다 앞뒤로 호응이 되고 좌우로 결합이 되더라는 겁니다. 우둔행자는 말이 우둔하고 기억력이 우둔한 것이라기보다는 초심이라는 두 글자를 화두로 팔만대장경을 타파한 아주 그릇이 큰 수행자였던 셈입니다.

그만큼 초발심의 초심이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이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첫 출근 할 때 어떤 마음을 먹었던가? 과연 그 첫 마음을 나는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더러 ‘처음처럼’을 즐겨 마시기는 하지만, 나의 처음은 어떠했던가? 이런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자신의 근본 마인드를 자주 점검해야 현재의 삶에 새로운 활력과 다짐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처음처럼, 초발심으로, 첫 출근 때의 각오…. 이런 것들이 흐려지면 일상의 모든 것이 타성에 젖게 되고 자기 발전의 활기도 덜어지는 것입니다.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여러분은 태조 왕건 하면 최수종만 생각나는가요? 

태조 왕건은 아주 독실한 불자였죠. 불교의 정신으로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국가경영의 기본 틀로 삼았던 왕입니다. 고려를 건국하고 나라의 기틀이 잡힐 무렵 태조왕 건은 자신의 왕사인 ‘광자대사’를 찾아갑니다. ‘광자대사’는 오늘날 곡성 태안사 동리산문의 개산조인 적인 혜철선사의 법손입니다. 그러니 대단한 선수행과 학식으로 왕사가 되셨겠죠? 아무튼, 그런 광자대사에게 왕건은 “이제 어지러운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나라를 열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길이 번영할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을 받은 광자대사는 태조 왕건에게 “지금 저에게 물으시는 그 마음을 잃지 않으면 나라가 길이 번영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왕건은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어땠을까요? 삼국 통일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무수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그 마음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이제 새로운 나라를 일으켰는데 이 순간 내 마음은 어떤 것인가? 많은 생각을 했겠지요? 예를 들자면,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하고 고려를 건국한 마음이 헐벗은 백성을 생각하는 자비로운 마음, 더 좋은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개혁의 마음, 전쟁과 대립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만들려는 마음…. 이런 것들을 위해 새 나라를 세웠다면 오래도록 이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나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초발심시변정각’이란 구절이 나오죠? 초발심이 정각으로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초발심이 흔들리면 정각을 이루지 못한다는 거죠. 이때의 초발심이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당연히 ‘성불하여 구제중생 하겠다’는 아주 대승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출가를 하면서, 혹은 불자가 되기 위해 삼보에 귀의하면서 나쁜 목적과 불손한 의도를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를 서원하고 ‘일체중생 성정각’의 서원으로 발보리심 하는 게 초발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초발심이 굳게 잘 지켜지면 마침내 수행을 하고 도력을 더하여 성불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이든 나중이든, 마음먹은 일은 그 바탕을 튼튼히 하고 변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초발심의 처음이란 자신이 생각을 일으키는 그 순간입니다. 흐르는 시간에, 흐르는 인생에 처음은 모든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을 먹으면 그 순간이 초발심의 순간이거든요. 그 일으킨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수행의 힘이고 지혜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첫 출근 할 때의 그 마음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설령 그 마음이 아니더라도 매일 아침 출근 할 때 어떤 마음을 먹느냐가 그 하루의 길을 바꿔줍니다. 아침에 불쾌한 마음으로 출근하기보다는 상쾌한 마음으로 출근을 해야 하루 일이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초발심이라는 것은 어느 특정 사안 특별한 시간에 국한된 초발심일 수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 늘 새롭게 마음을 일으키면 그 새로운 마음이 새로운 초발심이 되는 것이죠.

문제는 그렇게 일으킨 마음을 유지하는 힘과 지혜입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마음이 변한다면, 자신의 생활도 갈팡질팡이 되고 남에게 신뢰를 얻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더 큰 일, 더 좋은 인연을 만나기는 더 어렵습니다. 초발심이 중요한 것은 바로 항상 새로운 마음, 항상 처음처럼 마음을 추스르고 결기를 다지고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삼귀의가 불자로 살아가는 첫 불변의 다짐이라면, 그 삼귀의의 마음만 잘 지켜도 불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받들어 살아가는, 그 절대적인 가치에 자신의 마음을 둔 이상, 그 사람은 악행과 악업으로 물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귀의와 초발심이 개념은 달라도 흐트러짐 없이 잘 지켜나가야 바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인으로서, 종무원으로서, 불자로서, 여러 환경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지만, 늘 새로운 마음, 늘 새로운 다짐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마음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그 마음이 그 하루의 초발심입니다. 늘 활기차고 즐거운 시작으로 하루하루가 행복하면 그 일생 전체가 행복한 것은 당연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의 그 에너지를 응원하겠습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11월2일 서울 조계사 관음전에서 열린 ‘도반HC·법보신문 합동 정례 법회’에서 조계종총무원 사업부장 주혜 스님이 ‘삼귀의와 초발심’을 주제로 법문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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