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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40칙 대사불기(大士不起)

무제는 ‘부대사’ 속뜻을 헤아렸을까?

황제 수레 봤으나 자리에 앉아
“法地 움직이면 일체 불안해”
별갓 쓰고, 유신 신고, 법복 입어
三敎에 담긴 근본 이치 드러내

부대사가 양의 황제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공신이 물었다. “대사께서는 왕을 보고도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부대사가 말했다. “만약 법[法地]이 움직이면 일체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무주(婺州) 쌍림(雙林) 선혜대사(善慧大士, 傅大士: 497~569)는 의오(義烏) 출신으로 497년 5월8일에 고향인 쌍림에서 부(傅)씨로 태어났다. 부대사의 이름은 흡(翕)이다. 16세 때 유(劉)씨의 여자인 묘광(妙光)을 처로 맞이하여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장남은 보건(普建)이고 차남은 보성(普成)이다. 이후에 천축의 승려 달마를 만나 숭산에 주석하며 밤마다 좌선을 하여 수릉엄정(首楞嚴定)를 터득하였다. 이에 집과 논밭을 모두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무차대회를 열었고, 다시 처자를 광대로 팔아 얻은 오만 냥의 돈으로 법회를 열었다.

부대사는 반승반속의 신분이면서도 불법을 널리 펼쳤기 때문에 양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본 문답에서 부대사가 강경을 하는 차에 무제가 온 것을 보고도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황제에 대한 무례를 보인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존재감을 유별나게 뽐내려고 한 것도 아니었으며, 당시 승가의 규범도 아니었다. 그것은 부대사 자신이 불법의 실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에만 경도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어떤 사상과 도그마에도 치우침이 없는 매우 유연한 사상의 소유자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부대사가 그것을 단적인 표현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본 문답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의였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일찍이 부대사가 별갓을 쓰고[星冠] 유가의 신발을 신고[儒履] 몸에는 불가의 법복을 걸치고[身披法服] 황궁에 들어가자, 황제가 물었다. ‘불교입니까.’ 대사가 묵묵하게 관을 가리켰다. ‘그럼 도교입니까.’ 또 묵묵하게 신발을 가리켰다. ‘그러면 유가입니까.’ 거듭하여 묵묵하게 가사를 가리켰다.

후에 황제의 부름을 받고 화림원 중운각에서 경전을 강의하는 차에 황제의 수레가 도착하였다. 대중이 모두 늘어서서 공손하게 서 있는데, 대사는 키를 뒤집어쓰고 일어나지 않았다. 신하가 꾸짖어 물었다. “어째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부대사가 말했다. “만약 법[法地]이 흔들리면 일체가 불안합니다.”

여기 등장한 문답은 부대사의 ‘만약 법[法地]이 움직이면 일체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는 말에 핵심이 들어 있다. 부대사는 불법에 대단히 친밀하였지만, 다른 가르침에 대해서도 올바른 안목을 구비하고 있었다. 때문에 부대사는 삼교 가운데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균형 잡힌 안목을 보여주는 의미로 법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부대사가 말한 법이란 일체의 중심이 되는 근본도리를 의미한다. 사람에게는 인륜의 도리가 있고 천지에는 음양의 도리가 있듯이 삼교(三敎)에서 내세우는 근본이치를 그대로 수용하여 긍정한 말이었다.

예전에는 오늘날 말하는 종교(religion)라는 말 대신에 삼교라는 말을 활용해왔다. 여기에서는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각각에서 가르치고 있는 궁극적인 내용을 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무제는 불교의 정신에 의거하여 국가를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친히 곤룡포 대신에 가사를 걸치고 정무를 보았기 때문에 소위 황제보살 내지 불심천자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선문헌에서는 그와 같은 양 무제가 달마를 추방한 이후에 부대사, 곧 선혜대사가 황궁을 찾아가서 황제가 추방한 달마야말로 바로 관음보살의 화현이라고 말하며 황제에게 직언할 정도의 강단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이에 보살(菩薩)을 의미하는 대사(大士)라고 불렸다. 그런 만큼 부대사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 까닭에 황제의 수레가 도착하였는데도 여타의 사람들과 달리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삼교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은근히 드러내주었다. 그런데 달마를 추방했던 무제가 과연 부대사의 그와 같은 속뜻을 얼마나 헤아려주었을지 궁금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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