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 고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지 묻는 귀족을 교화하다

고행은 윤회의 거센 흐름 건널 수 없어

부처님, 고행 통해 깨달음 추구
6년의 고행 끝 길 아님을 확인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바른 앎과 봄으로 해탈 성취

수행자 고따마는 6년간의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깨달음은 요원하였고, 지난 수행의 자취를 살펴본 뒤, 결국 고행은 깨달음의 방법이 아님을 알고 포기했다. 이것이 부처님이 수행자 시절 경험한 처절한 6년간의 고행의 결말이다. 고행은 깨달음의 길이 아님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수행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행은 고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세속적 삶과는 다른 삶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고행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단식을 한다던가, 깊은 산중에 들어가 모든 관계를 끊고 냉골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씩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부처님께서 선언하셨음에도 말이다.

“앙굿따라니까야”(2권)에 ‘살하의 경(Sāḷhasutta)’이 있다. 살하는 당시 웨살리(Vesali)의 명문가문인 릿차비족 출신의 귀족이었다. 그는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살하] 세존이시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거센 흐름을 건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계행에 의한 청정을 통하는 것과 고행에 의한 금욕을 통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붓다] 살하여, 계행에 의한 청정은 이교도들과 공통되는 요소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나 살하여, 고행에 의한 금욕을 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고행에 의한 금욕을 핵심으로 삼고, 고행에 의한 금욕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거센 흐름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살하여, 신체적으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언어적으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정신적으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 앎과 봄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거센 흐름[ogha]은 윤회의 소용돌이로 몰아치는 번뇌의 흐름을 의미한다. 이러한 거센 흐름을 건넌다는 것은 해탈, 열반의 성취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인들에게는 해탈, 열반을 성취하는데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계행을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고행을 통한 금욕의 실천이다. 여기에 대해서 살하는 부처님께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있는 것이다. 계행이란 일반적으로 도덕적 규율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이유는 부처님께서 “계행에 의한 청정은 이교도들과 공통되는 요소”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불교나 자이나교와 같은 당시 사문종교를 포함해서 바라문교 역시도 일반적 도덕적 규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공통 요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단호하게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는 거센 흐름을 건널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당시 고행주의의 대표는 자이나교였다. 그리고 일부 사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극단적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 수행을 하였다. 그러한 극단적 고행이 해탈을 가능케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고행의 무익함을 선언하시고, 중도의 수행법을 통해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셨다. 

계행은 공통적인 것이니, 도덕성의 계발과 습득은 수행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만약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수행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신구의, 즉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청정한 행위를 하는 것이 ‘바른 앎과 봄’을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가르침에서 부처님은 고행을 통해서는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다.

바른 앎과 봄이란 어떠한 것이든 거기에 자아관념[我]을 만들지 않고, 소유관념[我所]을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계행이냐 고행이냐는 이분법적인 질문에 부처님은 몸과 말과 정신의 청정한 행위를 통한 ‘바른 앎과 봄’을 통해 깨달음을 길을 제시하고 계신다. 흑 아니면 백만을 고집하는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중도의 가르침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