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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틱낫한 스님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상호존재‧공동체성‧깨어있음 연계 실천 강조

명상 바탕으로 한 반전운동 중 망명, 프랑스에 플럼빌리지 개설
초기불교 깨어있음‧대승 화엄‧유식 수행관을 회통한 불교관 제시
“현 세태 저항엔 좋은 공동체 필요” 강조하며 공동체 확대 노력

틱낫한 스님은 좋은 공동체가 잘못된 현 세태를 바꿀 수 있다면서 수행공동체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좋은 공동체가 잘못된 현 세태를 바꿀 수 있다면서 수행공동체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도착했다. 집에 와 있다.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 있기만 하면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다. 이는 ‘반야심경’의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를 말한다. ‘본래 붓다’의 의미 또한 품고 있다. 이렇게 옛 경전의 깊은 종교적 가르침을 현대의 살아 있는 언어와 의미로 되살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해, 수용, 실천, 변화를 이끄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틱낫한(Thich Nhất Hạnh, 釋一行, 1926~) 스님이 그 길을 갔다. 그는 베트남 중부도시 후에(Huế)에서 출생해 16세인 1942년에 임제종 소속의 투 히에우(Tu Hieu) 사원으로 출가하여 소를 키우는 등의 행자생활을 하다가 1947년 비구계를 받는다. 소신공양으로 당시 베트남 가톨릭계 응오딘지엠 독재정권의 불교탄압에 저항한 틱 꽝득(Thich Quảng Đức)도 같은 임제종 계통의 거장이다. 그의 가르침도 받았으리라. 

1961년 9월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에 유학하며 비교종교학을 가르쳤으며 컬럼비아대학 강의를 맡아 달라는 것을 사양하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일찍이 그는 베트남에서 참여불교(engaged Buddihsm) 운동을 전개했다. 민중의 고통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행동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의 삶을 사는데 있다.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마음의 평화, 명상생활과 더불어 전개된다. 명상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 희생자들을 돕는다.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반전운동을 전개했기에 남‧북베트남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당했지만, 1967년에 마루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천거된다. 결국 그는 1973년 프랑스로 망명한다.

틱낫한은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 수행공동체 건립에 몰두한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에 세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 국제수행센터다. 일명 자두 마을. 이 수행공동체에서 20개 이상의 나라 200명의 사부대중이 3개의 마을에 모여 서로 어우러져 생활을 한다. 틱낫한은 미래의 부처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 온다고 했다.

“2600년 전에 석가모니 붓다는 다음 붓다가 마이트레야(미륵)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붓다’로 불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마이트레야 붓다가 어느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일그러진 세태에 저항하려면 좋은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다.”(‘너는 이미 기적이다’)

그는 물방울이 하나하나 모여 강물이 되어 서로 조화롭게 흐를 때 큰 바다에 이르듯 공동체 생활을 강조한다. 그에게 승가란 비구, 비구니만 일컫지 않고 재가신도 남녀를 포함한 대중이다. 그가 베트남에서 임제종의 일파인 접현종(接現宗, Order of interbeing)을 창종했을 때도  상가는 사부대중이었다. 공동체로 조화롭게 살면서 공동의 지혜, 공동의 치유, 상호작용이 서로를 도우며 깨어 있는 전일성에 이르도록 한다. 그의 이런 노력에 힘 있어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 전역에 이르러 재가 수행공동체만 1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플럼빌리지에는 여름 한 달 동안 4000여명이 참여하여 1주일 이상 머물다 간다. 

틱낫한의 불교관에는 초기불교의 깨어 있음(mindfulness), 대승불교의 화엄, 그리고 유식(唯識) 수행관이 조화롭게 섞여 있으며 조사선의 ‘본래 붓다’ 정신과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 극락을 지향한다. 사상적 바탕의 저변에는 화엄에서 말하는 ‘상호 존재’, 서로 어우러져 있음이 흐르고 있다. 이를 그는 ‘인터 빙(inter-being)’이라 했다. 한자로 접현(接現)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현재를 서로 접하고 어우러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사이 존재’로서, ‘서로 존재’로서. 함께 존재하는 이러한 사람과 사물들은 비어 있음, 공(空)을 관통한다. 그의 상호 존재와 비어 있음에 대한 명상 언어를 보자.

“그대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는 이 종이 안에 구름이 떠 있는 걸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구름이 없다면, 물이 있을 수 없다. 물이 없다면 나무들이 자랄 수 없다. 나무들이 없다면 그대는 종이를 만들 수가 없다. 따라서 여기, 구름이 있다…(중략)…우리는 말한다. ‘한 장의 종이는 종이가 아닌 요소들로 만들어져 있다.’ 구름은 종이가 아닌 요소다. 숲은 종이가 아닌 요소다. 그리고 햇빛도 종이가 아닌 요소다. 종이는 온통 종이가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만일 그 종이 아닌 요소들을 전부 되돌려 보낸다면 종이는 텅 비어 버릴 것이다. 무엇이 텅 비는가? 분리된 자아가 텅 비어 버리는 것이다.”(‘틱낫한의 평화로움’)

공동체 구성원의 수행 원칙은 유식의 실천론에 근거한다. 우리 마음의 아뢰야식에는 부정의 씨앗, 긍정의 씨앗, 가치중립적 씨앗이 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긍정의 씨앗에 물을 주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하며, 부정의 씨앗은 잘 보듬고 다독여서 궁극적으로 그 성질을 바꾸는 것이다. 그 방법은 현재 이 순간에 깨어 번뇌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며 온 누리에 상호 존중, 감사. 평화의 에너지를 보내는 것이다.

틱낫한의 기도와 발원은 상호 존재, 긍정의 에너지 보내기, 공동체성, 그리고 깨어 있음과 연결된다. 부처님은 물론 조상님, 이웃, 하늘과 별들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부처님이 숨 쉬고 있다. 깨어 있는 기도를 통해 믿음, 자비, 사랑의 에너지가 상대와 접속하고 즉시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도와 발원의 힘이 서로 연결되어 나를 변화시키고 타자를 변화시킨다. 함께 모여 공동체의 힘으로 기도하면 그 에너지는 한마음 집단에너지로 더욱 배가 된다. 건강과 성공의 기도도 좋지만, 수행자의 기도는 사물의 본질, 상호의존성, 여여에 도달하는 기도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거기에 도달하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기도 발원 하나를 소개해 본다. 

“…무명과 착각이 세상을 불타는 지옥으로 만들고 있음을 압니다./ 변화를 만드는 길을 걸으며/ 이해하고 사랑어린 친절을 나누기를 서원합니다./ 바야흐로 내가 깨달음의 정원을 가꿀 것입니다./ 비록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죽는 인생이지만/ 수련〔수행〕의 길을 걷고 있으니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평화롭고 자유로이 살면서/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깨어난 자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순간 마다 이 몸. 깊은 감사로 충만합니다.(‘틱낫한의 기도의 힘’)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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