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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윤이상의 오라토리오 ‘연꽃 속의 진주여!’

기자명 김준희

굳건한 불교적 정서 서양음악 속에 거침없이 표현

붓다 연꽃에 비유해 서양에 알린 최초 불교 오라토리오
오케스트라 기본 악기에 목어·탐탐·명자·편종 등 더해 
점차적 음향 증대와 스타카토 강조로 가사 표현 세심히

생전의 윤이상.

“고타마, 질문을 받다. / 오, 연꽃속의 진주여! / 죽음, 우리는 죽음을 말합니다. /죽음을 말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옴 마니 파드메 훔!”

윤이상(1917~1995)의 유일한 오라토리오 ‘옴 마니 파드메 훔!(연꽃 속의 진주여!)’의 두 번째 악장의 첫 가사이다. 모두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의 핵심은 2악장에서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질문자는 붓다를 ‘연꽃 속의 진주’라고 부르며 죽음을 목전에 둔 중생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스승’ 이미지의 붓다와 ‘구원자’ 이미지의 아미타부처님이 동시에 등장하는 이 부분은 전체 작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오라토리오(oratorio)는 종교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한 음악극을 말한다. 무대나 연기, 의상이 배제된 채로 공연이 이루어지며 해설과 독창, 그리고 합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전례음악이 아닌 개별적인 종교음악의 형태를 띄고 있다. 오라토리오는 20세기에 들어서는 구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선전이나 국가주의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작품들도 생겼다. 종교적인 내용을 극화한 오라토리오는 서양문화권에서는 성경의 내용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동양문화권을 기반으로 하는 오라토리오는 불교,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 이야기를 음악극화 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윤이상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음악 세계의 원류는 기독교문화에 기반을 둔 서양음악과 동아시아의 음악이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뱃노래, 위령제, 남도창, 판소리 등의 문화를 경험했고 사찰에서 들리는 소리부터 시조, 가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체득된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정서 덕분에 그의 음악에는 서양의 문화는 물론이고 유교, 도교 그리고 불교와 샤머니즘까지 혼합된 한국의 문화와 동아시아의 문화가 융합돼있다. 그가 서양음악사상 최초의 불교 오라토리오인 ‘연꽃 속의 진주여!’를 작곡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베를린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윤이상.

윤이상은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불교의 주문(기도문)을 오라토리오라는 서양 클래식 음악의 악극 형식을 빌려 새로운 작품으로 빚어냈다. 우리나라에서 ‘육자대명왕진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은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대표하는 주문이다. 윤이상은 자신의 종교적인 작품을 ‘불교적인 전통’ 속에서 기억하기를 원했다. 이 곡은 소프라노, 바리톤, 혼성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며 가사는 모두 독일어로 되어있다. 다섯 악장의 제목은 ‘연꽃’ ‘석가, 질문을 받다’ ‘갈증’ ‘소멸’ ‘열반으로’이다. 1악장과 3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만 이루어져 있다. 

약 27분 동안 연주되는 이 작품의 오케스트라 악기구성은 상당히 특이하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기본으로 목어, 탐탐, 명자, 편종을 더하고 마라카스와 구르케까지 동원하는 등 음향에 많은 신경을 썼다. 현악기의 트레몰로와 포르타멘토를 통해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다양한 관악기와 타악기의 리듬적, 선율적 표현으로 서양악기로 최대한 불교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만 이루어진 첫 악장 ‘연꽃’은 중생들의 세계 속에서 물들지 않는 청정한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연꽃은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과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은 존재’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기대감과 긴장감까지 담고 있다. 

중심 악장인 2악장 ‘고타마, 질문을 받다’는 소프라노와 합창,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어 있다. 소프라노는 ‘제자가 질문하는 소리’를 나타낸다. 앞서 말한 첫 번째 연의 죽음에 관한 질문에 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계속된다. 

“사랑은 고통과 고뇌를 가져옵니다./ 세계에서 사랑과 희망, 의지 근원은 어디인가요? 누가 알려주나요?/ 자비롭기도 하여라, 두렵기도 하여라./ 어떤 상황에 직면할 때, 누가 알려주나요? (후략)” 

죽음, 고통 그리고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제자의 소리는 3악장의 ‘갈증’을 거쳐 4악장에서 바리톤의 ‘스승이 답하는 소리’로 화답하며 ‘찬동하고 기도하는 소리’인 합창으로 이어진다. 4악장 ‘소멸’은 바리톤 파트에서 반드시 목탁소리가 함께 등장해 이 부분이 고타마 붓다의 역할임을 뒷받침해준다. 타오르고 소멸하는 것과 같은 4악장은 음악적으로 가장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 악장 ‘열반으로’는 ‘인간의 완전한 해탈로 일어나는 최고의 청정’을 표현하듯 고요하게 맺는다. 

‘연꽃속의진주여’를 작곡하고 있는 윤이상(1964년, 서베를린 자택에서).

전체적으로 윤이상의 초기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12음 기법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독창부분에서는 가야금의 음색 느낌을 주는 포르타멘토 주법을 많이 사용했고, 3도 간격으로 꺾는 음을 사용해 민속악에서 많이 사용하던 창법을 떠올리게 했다. 2악장 후반부에서는 선율적으로 증음정을 사용해 긴장감을 나타냈다. 또한 후렴구인 “Om namo Amitabbaya, Buddhya Om mani padme hum!” 부분은 합창으로 연주되며 독창자가 다른 가사를 연주할 때에도 분리돼 등장한다. 합창은 베이스-테너-알토-소프라노 순으로 등장해 점차적으로 음향을 증대시켰고, 특정 단어를 표현할 때에는 스타카토로 강조를 하거나 음가를 길게 늘이는 등 가사의 표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윤이상은 1964년 서베를린에서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나는 나와 아주 친근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했다. 대개 음악을 통하여 종교나 사상, 또는 음악 외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윤이상은 그의 정서 깊은 곳에 자리한 익숙하고도 굳건한 불교적 색채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연꽃 속의 진주여!’는 텍스트의 명확함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 그는 붓다를 연꽃에 비유하고 균형 있는 다섯 악장을 통해 부처님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으로 서양세계에 한국의 불교를 알렸다. 이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 음악적, 종교적인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불교 오라토리오를 탄생시킨 윤이상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자주 무대에 올리는 한 편, 우리말 가사 번안 등의 연구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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