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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김환기의 붓다 : 불상 파편에 담긴 미소

기자명 주수완

불완전한 상태에서 돋보이는 불상의 미소

불상의 머리 부분 파편을 소재로한 그림에 큰 감동 느껴
한국전쟁 중 그려진 불상은 소묘의 대상 아닌 불교적 위안 
연꽃 덧붙인 불두는 상처 입은 국민에게 보여주고픈 희망

김환기의 ‘깨어진 불두’ 스케치들.
김환기가 그린 ‘문예’ 9월호 표지. 1953년.

수화 김환기(金煥基, 1913~1974)가 불교에 대해 얼마만큼 관심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달항아리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서양화가로서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불교미술에도 관심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 자체에 대해 깊이있는 이해와 식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그린 그림도 불교회화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그가 소장하고 있었던 불두편, 즉 불상의 머리 부분 파편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불상이라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정물화의 대상인 소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소품이라고 하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을 그는 이 불두에서 느끼고 있었다. 필자가 조사하지 못한 탓에 그의 작품 속 모델이 되었던 불두가 아직도 그의 유품으로 소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깨어진 불두’ 스케치와 같은 몇몇 흔적들을 돌이켜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불두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 문갑(文匣) 위에는 아기 주먹만한 불상 얼굴이 놓여있다. 아깝게도 목이 떨어졌고, 양 귀가 떨어졌고, 그것은 할 수 없다 치더라도 눈 위 눈썹에서 이마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두루뭉실한 돌덩어리와 같은 그러한 불상의 얼굴이다. 이 처참하게 된 불상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아름다울까. 3년을 한자리에 두고 늘 바라보고 있으나 처참한 이 반조각의 얼굴에 떠돌고 있는 불가사의한 미소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신라 천년의 웃음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는 이 얼굴에 대해서 ‘평화의 미’를 써야할 책임을 느끼고 있지만, 이 예술의 조그만 파편이 이토록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전하는 두 점의 불두 스케치 중에서도 이마가 깨어진 스케치에 해당하는 불두가 아마도 글에서 언급한 불두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 점은 위아래로 깨어진 것인데, 이것이 실제 불두를 모델로 해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작품을 위한 상상 속의 스케치인지 알 수 없으나, 이 역시 불두에 큰 균열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아마도 그가 구할 수 있었던 불두라는 것이 이처럼 모두 파편화된 것이었고, 한국전쟁의 혼란 중에 누군가 먹고살기 위해 내다판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김환기의 불두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 있는 모든 머리만 남은 파괴된 불상을 대변하는 불두일 뿐이다.
 

김환기, ‘석굴암 인상’.

김환기가 불상을 소재로 남긴 작품들도 1950년대에 그려진 것들이다. 그 중에는 한국전쟁 기간 중에 그려진 것도 있어서, 아마도 전쟁의 참담함 속에서 불상은 아그리파 석고상과 같은 단순한 소묘의 대상이 아니라, 불상이 지닌 불교적 메시지가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기 때문에 위의 독백에서처럼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그의 문갑 위 불두가 먼저였는지, 아니면 다른 불상들을 보고 관심을 느끼다가 불두를 손에 넣게 된 것인지도 현재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그가 그린 불교 주제의 그림에서 불상은 머리만 강조되어 있다. 완전한 불상인 석굴암 본존불을 그릴 때도 그는 머리만 강조해서 그렸다. 유사한 구도를 지닌 ‘붓다’도 있지만, 그 작품 속 불두는 보편적인 불상의 불두라면, ‘석굴암 인상’ 속 불두는 분명히 석굴암 본존불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날카로운 눈매로 앞을 뚫어지게 관통하는 그 모습은 분명 석굴암 본존불의 그 눈매다. 그 눈매만으로 석굴암 본존불을 표현해 낸 것을 보면 김환기는 그 눈매에서 이 걸작의 요체를 뽑아낸 듯하다. 여기에 덧붙여 연꽃을 함께 그리는 것으로서 김환기는 그만의 불교적 표현을 완성했다.

불상과 연꽃은 염화미소를 떠오르게 한다. 석가모니께서 설법하는 대신 연꽃을 들어 올리자 오로지 가섭존자만이 그 뜻을 이해하고 미소지었다는 이야기인데, 김환기는 자신이 불두에서 발견한 알 수 없는 미소를 통해 염화미소를 연상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 제자들에게 있어 연꽃은 일종의 시각적 화두였던 셈이고, 김환기에게는 창작의 화두였던 셈이다.

단원, 혜원에게도 배울 것이 없었다던, 김환기. 오히려 달항아리와 같은 도자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던 그에게 이 화두와 같은 불두와 연꽃 모티프는 다양하게 확장해나갈 수 있는 또다른 주제였을 수 있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달항아리처럼 불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김환기, ‘붓다’, 목판에 유채.

그의 스케치 속 불두는 사람으로 치자면 정말로 팔도, 다리도 떨어져 나간 비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불두는 미소짓고 있다. 완전히 갖추었을 때라야 나올 수 있는 미소라고 생각했던 불상의 미소가,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 더욱 돋보이는 미소로 보이는 것이 한편으로는 오히려 신선하다.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평화를 찾은 불두의 이미지는 한국전쟁으로 상처 입은 한국인들에게 김환기가 보여주고 싶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53년 발간된 ‘문예’지 9월호의 표지에 올라갈 그림으로 이 불두와 연꽃 모티프를 선택했다. 현재 전하는 그의 불두 작품은 모두 측면인데 반해 이 표지 그림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표지·삽화 그림을 다수 그렸고, 그때의 모티프들은 실제 작품으로도 이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문예’ 표지 그림 속 정면을 향한 불두의 작품도 실제 작품으로 충분히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달항아리에 심취하면서 스스로 “달항아리 귀신이 될지도 모르겠다”고도 했는데, 나아가 불두 귀신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의  완숙기 작품으로 대표적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년)와 같은 작품의 제목도 왠지 연기(緣起)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만약 그가 교통사고 이후 불의의 사고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한걸음 더 불교에 다가간 그의 작품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물론 어쩌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이미 다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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