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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라는 말의 비정상성

기자명 민순의

2020년 10월 30일 현재 올해에만 열다섯 분의 택배 노동자께서 사망하셨다. 비극의 속도는 가속화되어 엊그제의 소식이 오늘 낯선 일인 양 다시 도달하고, 듣는 이의 마음도 툭 툭 떨어져 휘청이는 몸을 가누기 어렵다.

의문이 꼬리를 문다. 배송업체들이 당일배송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나섰을 때 그 정책은 택배 노동자분들과 합의가 된 것이었나. 분류작업을 택배 인력이 담당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똑같은 비극이 이토록이나 반복되는 마당에 당일배송 정책과 택배 인력에 대한 분류작업 배당을 즉시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추가 인원을 고용하기 힘든가. 그렇게 조달하기 어려운 비용이라면 그래서 그 값에 해당하는 노동을 택배 노동자들에게 가중하였나.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가능한 최대한의 이익 확보가 자본의 속성이라 치자. 그렇다면 그것을 규제하고 조절하며 해결해야 할 의회와 정부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인가. 인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이 때에. 사람이 이렇게나 죽어나가는 이 마당에. 더 이상 내 아들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희생자 아버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여전한데 며칠 만에 또 다른 희생자의 부고를 들어야 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세상에,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한 것이, 있나.

하지만 이 순간 더 기가 막힌 건 바로 나다. 당일배송 광고를 듣고 난 좋아했다. 늦은 밤까지 기다리다 잠이 든 택배가 다음 날 새벽 도착해 있는 것을 보고 난 좋아했다. 이기적이었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극한직업의 사례로 택배업을 소개했을 때 분류와 배송의 고강도 업무에 힘들어하는 예능인의 모습만 보았지 고강도 업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물음을 갖지 않았다. 시야가 좁았다. 새벽에 물건이 도착했다면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는 잠 못 자고 일을 했을 것 아닌가. 새벽부터 시작한 분류작업을 오후에야 간신히 마친 뒤 쉴 새도 없이 배송을 이어가는 그 예능인의 모습에서 그렇게 고된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함을 느꼈어야 되지 않나. 이 세상 모든 극한직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에게 기함하며 분노하고 슬퍼하고 죄스러워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프고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는 사이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공명하며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대한민국의 택배 노동자분들께 사과와 감사를 표하고 있다. 오늘 구입한 물건을 오늘 받지 않아도 좋다고, 그분들께 돌아갈 수만 있다면 택배비가 인상되어도 좋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따뜻한 일이다. 이 사회의 경제와 정치 시스템이 부조리하고 비정할지라도 사람들의 가슴에 동체대비의 마음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런데 다시 또 이상해진다. 왜 아파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그 부조리한 구조의 모순을 앞장서 바꿔 보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 나조차도 모니터 속 기사를 읽고 탄식하며 댓글 하나 보태는 게 전부가 아닌가. 이토록 들끓는 마음들이 있는데, 그 마음을 모아서 행동하려는 시도는 왜 없을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조차 없을까.

하지만 정말로 이상한 건 바로 이것이다. ‘과로사’라는 말의 기이함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 과로로 사망한다니, 사람이 일을 하다가 너무 고되어 죽을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우리는 노예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지간한 노예제의 사회에서도 노예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노예에게도 그 노동력에 상응하는 몸값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에 상응하는 몸값조차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이 일을 하다 죽는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과로사라는 말의 비정상성. 나만 이상한가.

※ 이 글이 송고된 후인 11월 12일 정부는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 제한 등을 담은 ‘택배기사 과로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늦은 감이 있으나마 지지를 보낸다. 아직은 택배회사에 대한 권고 수준이지만, 인명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흐름에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연구실장 nirvana1010@hanmail.net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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