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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41칙 수산친절(首山親切) 

납자에게 수행은 ‘해가 뜨고 지는 이치’ 

좌우고면하던 납자가 수산 향해 
수행 이치 묻자 “동지 지나면 입춘”
필경 방법 묻자 “동지 지나면 한식”
승려에게 수행은 자연 섭리와 같아

한 승이 수산성념에게 물었다. “납자가 착실하게 수행하는 이치란 어떤 것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동지로부터 45일이 지나면 입춘이 된다.” 승이 물었다. “그러면 필경에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동지로부터 한식까지는 105일이다.”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은 오대 임제종 승려이다. 출가납자로서 제일의 본분사는 여법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수행을 벗어나서 달리 본분사란 없다. 그런 만큼 수행은 출가자의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수행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납자가 있다. 그것은 아직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에게 아직 충분한 발심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작 제대로 발심한 납자라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수행의 방법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착실하게 정진하는 길 뿐이다. 따라서 납자라면 반드시 진정한 발심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수행납자로서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할 과제이다.

여기에서 한 승이 수산성념에게 묻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본분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갈팡질팡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문을 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 질문에 대하여 수산은 동지로부터 세어 45일이 지나면 입춘이라는 절기가 된다는 말로 대응해준다. 이것은 납자의 수행이 본분사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만큼이나 분명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은근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승은 조금 이해했다는 듯이 나아가 다시 질문을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자신은 필경에 어떤 수행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선지식을 찾아가야 하며 어디에서 주석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해서도 수산은 여전히 절기의 법칙을 들어서 동지로부터 105일이 지나면 한식이 되는 이치를 언급해준다.

앞의 답변과 뒤의 답변은 서로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다르다는 것은 물론 절기가 다르겠지만 일수가 다르고, 나아가 승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그와 같은 답변을 들은 것에 대하여 의심이라도 제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수산으로부터 재차 절기를 들어 답변을 들은 것에 대해서는 이제 승이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었다. 수산은 인과법칙의 도리를 매우 쉽게 설명해준 것이었고, 승은 그와 같이 친절한 선지식의 답변을 왜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던가를 반성할 수가 있었다.

그 상황에서 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그때부터 당장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면 하루 먼저 성취할 수 있다는 이치를 분명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따라서 승은 더 이상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더 이상 답변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세월은 여전히 어제가 먼저 오고 오늘이 나중에 오며 내일은 더 나중에 도래한다.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도리를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미리부터 오지 않은 미래의 결과를 오늘에 끄집어 갖다놓고 아직 수행을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서 벌써 깨침을 완성한 것처럼 기고만장한 납자가 허다하다. 그러나 수행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생을 걸어놓고서 정진해야 한다. 나아가서 한 생을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덤벼들어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것이야말로 납자로서 착실하게 수행에 임하지 않으면 도저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수산이 생각하고 있는 착실한 수행의 모습이란 다름이 아니라 우리네 모두가 일상에서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맞이하고 보내는 일과처럼 꾸준히 빠짐없이 그리고 전력을 다하여 덤비지 않으면 안 되는 이치임을 가르쳐 보여준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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