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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태생에 의해 고귀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문이 좋다고 바라문이 될 수 없다

위없는 청정함 성취하는 건
바른 노력과 정진으로 가능
창조신화·운명론적 업 관념
뿌리 깊은 계급의식의 배경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계급제도가 완성된 시기였다. 바라문(사제), 끄샤뜨리야(귀족), 바이샤(평민), 수드라(노예), 불가촉천민의 계급이다. 계급간 질서는 엄격했으며, 특히 상위 두 계층은 절대적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이 계급제도의 배경에는 공고한 신념체계인 창조신화와 운명론적 업관념이 놓여 있다. 오늘날 인도 사회가 계급제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창조신화와 운명론적 업이론에 근거한다.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현대 한국사회 역시 암묵적 계급질서는 존재한다. 오늘날 계급을 구분하는 가장 큰 잣대는 ‘돈’이 아닐까. 

시대가 변해도 계급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뿌리 깊은 비교의식, 그리고 욕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비교의식을 불교에서는 ‘만(māna, 慢)’이라고 표현한다. 남과 비교해 자만심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거나,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로 ‘만’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 비교하는 마음, 의식을 끊어야 비로소 아라한이라는 궁극적 깨달음을 성취하는 자가 된다. 아라한은 10가지 번뇌를 끊어야 하는데, 마지막 다섯 가지에 바로 이 ‘만’이 있다. 그만큼 남과 비교하는 의식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상윳따 니까야’1권에 ‘숫디까의 경(Suddhikasutta)’이 있다. 숫디까는 바라문으로, 어느 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와 서로 시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하는 작은 경전이다.

[숫디까] 계행을 지니고 고행을 하더라도 어떠한 바라문도 청정하지 못하네. 명지와 덕행을 갖춘 사람만이 청정하며 그 밖에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네.

[붓다] 많은 격언을 암송하더라도 안에는 쓰레기로 더렵혀지고 위선으로 둘러쌓여 있으면, 가문이 좋다고 바라문이 될 수 없네. 귀족과 사제와 평민의 계급이나 노예와 천민의 계급 누구나 스스로 노력하여 정진의 마음을 일으키고 항상 견고하게 정진하면 위없는 청정을 성취하네. 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알아야 하리.

숫디까 바라문은 당시 수행풍토에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었던 인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계행을 갖추고 고행을 하면 진정한 바라문 혹은 수행자로 평가하는데, 숫디까는 명지와 덕행을 갖춘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명지와 덕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숫디까는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부처님은 그에게 ‘올바른 노력과 정진’이 명지와 덕행을 성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당시 계급사회를 직접 언급하며, 계급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노력해 바르게 정진하면 위없는 청정함을 성취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의 일관된 입장이다. ‘숫따니빠따’에서도 “어떤 이들이 바라문입니까?”라는 질문에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다”라고 답하셨다. 바라문이 농사를 지으면 그는 농사짓는 사람이고, 정치를 하면 정치하는 사람이지 바라문으로 태어났다고 바라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즉 부처님은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을 보아야지, 배경이나 출신이,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에서도 부처님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안에는 쓰레기로 더렵혀지고 위선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이란 말은 한자어로 말하면 ‘교언영색(巧言令色)’에 가까울 것이다. 이는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일이다. 그렇기에 결코 청정한 삶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출생을 통해 바라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개인이 욕망으로 만들어 놓은 허구적 세계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념적 프레임에 메이지 말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갖고 부단히 노력할 때, 우리가 원하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숫디까 바라문은 이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을 성취한 자가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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