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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염불의 요결

기자명 허만항

육근을 모두 거두어들이는 게 염불 요결

귀를 거두어 잘 듣는 게 육근 거두는 수행 시작하는 곳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듣는 것과 산란함은 공덕 차이 현저
염불은 상중하 모든 근기가 활용하고 이익을 얻는 방법

인광대사는 귀를 거두어 잘 듣는 것이 육근을 거두는 수행을 시작하는 곳이라고 했다. 부처님의 전법으로 첫 우바새가 된 이들 역시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데서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제178칙: 정토법문을 닦으면 크게 행복할 수 있다. 

고인이 말하길, “삶과 죽음은 또한 큰일이니, 어찌 슬프지 않는가?” 삼가 말하자면 헛되이 슬퍼만 한다고 구경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삶과 죽음은 큰일이니, 믿고 발원하여 염불함은 큰 법문인줄 알아야 한다. 

이미 죽음이 슬픈 일임을 안 이상, 응당 죽기 전에 큰 법문을 닦는다면 죽음은 슬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게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업(淨業)이 무르익으면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대어 직하에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에 들어가 삶을 마치고 죽음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온갖 괴로움을 영원히 벗어나고, 일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점차 공덕을 쌓고 정업을 닦아서 성불하고 말 것이다. 

제179칙: 세월이 빨리 흐름은 위없는 묘법을 설함이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시절은 바뀌어 옮겨가며, 찰나찰나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조물주가 장광설을 내밀어 두루 너와 나 일체중생을 위하여 사람 목숨은 무상하고,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않으니, 급히 돌아갈 길 찾아 삼악도에 떨어지는 괴로움을 겪지 않는 위없는 묘법을 말씀한 것이라.

제180칙: 삶과 죽음의 큰일은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삶과 죽음의 큰일은 반드시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임종에 이르러서야 닦는다면 업력이 끌어당겨 삼악도에 떨어질까 두렵다. 

제181칙: 삶과 죽음의 큰일에는 아미타부처님만 의지할 뿐이다.

옛말에 이르길, “총명으로는 업력과 싸워 이길 수 없고, 부귀 또한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하였다. 삶과 죽음의 큰일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아미타부처님만 의지할 수 있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세상 사람은 아는 것이 매우 작고, 안다고 해도 진실한 믿음과 착실한 염불은 더욱 작구나. 

제182칙: 믿음과 발원이 간절하면 오늘 죽어도 좋다.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만약 오늘 곧 죽는다면 오늘 곧 서방극락에 태어날 것이다. 이는 공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신 말씀과 꼭 같다. 어찌 오늘 죽을 것인데 죽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세의 육진경계를 연연해 내려놓을 수 없는 이상 탐욕이 장애가 되어 정토의 경지가 나타나기 어렵고, 업에 따라 선악도에 태어나는 경계가 나타날 것이다. 경계가 나타나면 업에 따라 선악도에 태어나고, 극락왕생은 곧 허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정토행자는 오늘 죽어도 좋고, 다시 살아나 1백2십살 살다 죽어도 좋으니, 일체 종전의 업에 맡기고 망녕되이 헤아리지 말라. 만약 믿음과 발원이 진실하고 간절하다면 과보가 끝나 목숨이 다할 때 심식(心識)이 정토에 왕생할 수 있고, 이로부터 업력에 끌어당기지 않아 세간의 일체 고통을 벗어날 것이다. 서방극락에 이르면 구품연화의 꽃이 피어서 이번 생에 아미타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성불할 것이다. 

제183칙: 생사윤회를 끝마치는 법을 급히 찾아 나서라.

대장부는 이 세상에 태어나 하는 일마다 미리 계획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큰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버려 두고 묻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과보가 끝나고 목숨이 다할 때를 기다렸다가 곧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 이 일념의 심식이 육도 중 어느 세계로 향해 태어나게 될지 모른다. 그에게 인간 세계와 천상 세계는 타향이고 삼악도가 고향이다. 삼악도에서 백천 겁 동안 과보를 받는다면 다시 인간 세계와 천상세계에 태어날 기약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생사윤회를 끝마치는 법을 당연히 급히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184칙: 가족과 세상 사람들과 함께 정업을 닦아야 한다.

불법은 닦기 어려운 사람도 없고, 또한 닦을 수 없는 사람도 없다. 염념마다 정업(淨業)을 닦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하면 오랜 겁 윤회하여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자신과 남을 가엾이 여기고, 자신과 남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큰 목소리로 급히 불러 가깝게는 가족과 멀리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 도를 닦을지라. 이런 이익은 자신만 끝내길 구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어찌 천양지차에 그치겠는가. 

제185칙: 염불로써 왕생을 구하여야지 깨달음을 구해서는 안 된다.

불법의 법문은 무량하다. 대승과 소승, 권교와 실교의 일체 법문은 모두 계정혜 삼학에 의거하여 탐진치 삼독을 없애고, 몸과 마음을 완전히 청정히 하여 한 점 망념도 없어야 비로소 삶을 끝내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경계에 도달하는 것은 정말 하늘에 오르는 만큼 어렵기에 우리처럼 번뇌로 가득 찬 범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하면 공부의 깊이와 공덕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해서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이는 여객선에 함께 앉아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아 누구나 기꺼이 승선하기만 하면 곧 저 언덕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배의 힘에 속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함도 이와 같아 완전히 부처님의 위신력이지 자신의 도력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생사윤회를 마치고 번뇌가 생기지 않아, 이미 사바세계에서 오래 공부하여 번뇌를 없애고 생사를 끝마친 사람과 같다. 그래서 염불하여 반드시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해야지 결코 내생에 인간 세계와 천상세계의 복보를 구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고, 염불로써 깨달음을 구하려는 설법은 결코 따라서는 안 된다. 

염불의 요결은 육근을 모두 거두어들임(都攝六根)에 있다. 염불할 때 귀를 거두어 잘 듣는 것이 육근을 거두는 수행을 시작하는 곳(下手處)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들을 수 있는 것과 잘 듣지 않고 산란하게 염불하는 것은 그 공덕에 있어 그 차이가 현저하다. 이는 상중하 모든 근기의 사람이 활용할 수 있고,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익만 있고 폐해는 없으니, 마땅히 모든 사람들은 이 방법에 따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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