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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 일변도 수행만으로는 못 깨닫는다”

  • 교계
  • 입력 2020.11.19 13:44
  • 수정 2020.11.27 08:46
  • 호수 1562
  • 댓글 23

전국선원수좌회 11월16일 해인사 소림선원서 좌담회
발제 맡은 선원장 효담 스님 선원 문화 직설적 비판
“수행공동체가 먹고 자기 위한 생활공동체로 변질”
스승 없다 탓 말고 서로가 스승 되는 안목교환 강조
선원장·수좌스님들 ‘독참·선어록 강의’ 제도화에 공감
선법 스님 “봉암사 조실은 독참과 법문할 분 모셔야”

전국선원수좌회가 11월16일 가야한 해인사 소림선원에서 개최한 좌담회.
전국선원수좌회가 11월16일 가야한 해인사 소림선원에서 개최한 좌담회.

“좌선 일변도의 수행만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오늘날 선원은 몸뚱이만 모여 살 뿐 서로의 안목은커녕 생각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대화가 없다.” “수행공동체인 선원이 단지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생활공동체로 변질됐다.”

전국선원수좌회(의장 선법 스님)가 11월16일 합천 해인사 소림선원에서 개최한 ‘선풍진작과 선원 활성화를 위한 좌담회’는 오늘날 선수행 풍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활로를 찾는 자리였다. 매년 겨울과 여름 2000여명의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 적게는 8시간 많게는 16시간씩 용맹정진하는데 왜 확철대오했다는 이가 나오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또한 선을 외면하는 풍토가 확산되는 것은 선이 활활발발한 역동성을 잃고 틀에 갇힌 것 아니냐는 우려와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

제방 선원에서 온 선원장과 수좌 20여명이 참여했고 발제는 해인사 소림선원장 효담 스님이 맡았다. 효담 스님은 출가 이후 봉암사, 통도사, 범어사, 동화사 등 선방에서 정진했으며 2015년부터 해인사 선원장 소임을 맡고 있는 수좌다. 스님은 ‘우리는 왜 모여 있는가’라는 발제에서 선원 안거 문화 및 선원 일과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당나라 때 백장회해 선사가 총림을 세운 배경과 특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스님은 “선종은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정신혁명이고, 선원은 ‘성불작조(成佛作祖)’를 위해 모이는 학인들의 수행공동체”임을 명확히 했다. 이어 선의 황금기인 당송시대 총림들의 일반적인 ‘오도(悟道)시스템’을 소개했다.

좌담회 발제를 맡은 해인사 선원장 효담 스님.
좌담회 발제를 맡은 해인사 선원장 효담 스님.

스님에 따르면 당시에는 매일 지혜와 정안을 열어주는 단체교육인 법문이 있고, 방장실에서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로 마주앉아 안목을 점검받는 독참(獨參)이 필수였다. 이와 함께 수행자가 궁금한 게 생기면 스승을 찾아뵙고 묻는 청익(請益)과 스스로 승당에 앉아 정진하는 선택적 자율학습인 좌선이 이뤄졌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선원에는 2개의 정규수업(법문, 독참)과 1개의 보충수업(청익), 1개의 자율학습(좌선), 여기에 다 같이 울력하는 ‘보청(普請)’까지 5가지가 중심이었던 셈이다.

스님은 “오늘날 선원은 단지 수행을 목적으로 모여 산다는 형식만 갖출 뿐 안목교환이라는 선원 본래의 교육방식과 그 속에 담긴 정신사는 배제되고 있다. 저 역시 수좌이기에 지금의 현실이 부끄럽고 뼈아픈 부분”이라고 털어놓은 뒤 선원이 맞닥뜨린 현실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백장총림에서 중시됐던 정규과목인 (방장이나 조실스님의) 법문은 큰 행사 때 일반 신도들에게 생활법문하는 의례절차가 돼버렸으며, 스승과 제자가 마주앉아 안목을 점검받는 독참, 그리고 보충수업인 청익은 이제 흔적조차 사라졌다. 단지 자율학습에 해당하는 승당의 좌선에만 매몰돼 마치 그것이 선종 수행법의 전부인양 안거를 치르는 것이 오늘날 수좌들 모습이다. 무너진 교육체계 속에서 형태만을 쥐고 있는 형국이며, 방향성도 없이 좌선 일변도로 생활하는 공간이 선원이고 우리들의 안거가 아닌가.”

효담 스님의 지적은 깨달음의 가치를 완성시키고자 수좌들이 선원에 모였지만 의지와는 달리 하루하루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으며, 수행공동체인 선원이 단지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생활공동체로 변질됐다는 통렬한 반성이었다. 좌담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효담 스님이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걸어왔고 후학들을 이끌어왔음을 잘 알았기에 울림은 더욱 컸다.

효담 스님은 신중하면서도 신념에 찬 목소리로 선원이 수행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4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방장이나 조실스님의) 법문을 대신할 소참 시간을 가질 것, 둘째는 독참을 대신해 하루에 한번 조사어록을 강독하는 별도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운영할 것, 셋째는 청익을 대신해 대중이 서로 공부한 것을 들려주고 공부한 것을 물어보는 ‘안목교환’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운영할 것, 넷째는 하루 8시간 이상 좌선하는 집단 수행으로서의 좌선문화를 줄이고 개인의 자율 수행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스님은 “수좌들은 더 이상 스승이 사라진 이 시대를 탓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돼야 한다”며 “개개인이 가진 안목을 서로 교환하고 점검해주는 수행풍토야말로 한국불교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초기 선종사찰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수좌스님들.
좌담회에 참석한 수좌스님들.

발제가 끝나자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선법 스님이 직접 사회를 맡아 토론을 진행했다. 선법 스님은 이번 좌담회를 제안하고 추진한 당사자였다. 불교가 탈종교화 시대를 거치며 급변하는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은 점차 외면 받고 매너리즘에 빠져 세상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이를 타개하는 길은 당사자인 수좌들이 모여 선원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이날 참석한 수좌스님들은 좌담회 취지와 효담 스님의 발제에 깊은 공감을 표명했다. 많은 스님이 각자 선원에서 정진하며 느꼈던 문제점에 대해 털어놨다.

말문을 연 것은 대전 스님이었다. 스님은 2003년부터 조계종 기본선원인 백담사 선원장을 맡아오고 있는 수좌계의 중진이었다.

“그동안 기본선원에서는 경책, 용맹정진, 차담, 묵언 등을 시행해왔다. 나름 전통을 지키면서 해왔지만 갈수록 독참에 대한 절실함이 커져갔다. 오랫동안 참선하신 분들도 독참에 익숙하지 않으니 (자신의 체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로 인해 좌선에 한계가 많다고 느끼는 입방자가 적지 않다. 아울러 주로 좌선만 하다 보니 선어록을 지도할 수 있는 수좌도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언제든 스승에게 물을 수 있고 미흡하면 미흡한대로 탁마할 수 있는 독참과 청익이 반드시 제도화돼야 한다. 그래야 수행문화가 바뀐다.”

다른 수좌스님들도 자신이 보고 느낀 선원의 문제점에 대한 속내를 내보였다.

“한국 선원에서는 좌선을 통해 자신에게만 묻는 게 너무 익숙한 일이 돼버렸다.” “정진은 좌선을 빼놓고 말할 수 없지만 좌선만이 수행이라고 고집 부려서는 안 된다. 건강이 좋지 않은 수좌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엔 선원에서도 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안거 때만이라도 사용을 중지하도록 했으면 하지만 여의치 않다.” “선원에서 오래 정진했더라도 대부분 법문 능력이 부족하다. 법문을 하려고 해도 알아야 할 것 아니겠나. 어떤 스님은 용맹정진을 많이 했지만 법문도 못하고 한자를 읽을 줄 몰라 나중에 한자학원에 다니셨다고 들었다.” “선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없으니 지식이 없고, 지식이 없으니 묻지도 못한다. 우리는 선방에 좌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돼 있다.” “많은 스님이 공부가 왜 잘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럴 때 방장이나 조실스님이 길을 일러주면 발심하는데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하다. 발심 없이 앉아있으니 이번 해제비는 얼마나 나올까 하는 속빈 생각을 하게 된다.” “안거 내내 앉아 있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니 도대체 선이 사회에 기여하는 게 있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지금의 선원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독참 및 선어록 공부 제도화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수행은 발심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독참이나 청익은 꼭 필요하다.” “사실 독참이 새로울 것이 없다. 부처님 시대에도 해왔고, 당송시대 선원에서도 해왔고, 남방불교에서도 해오고 있다. 우리 절집이 되살리고 지켜야할 문화다.” “독참과 청익이 선원에 정착돼서 5년, 10년 꾸준히 갈고 닦으면 설법과 대화기술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 본인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됨은 물론 일반인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이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선법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선법 스님.

좌담회 진행을 맡은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선법 스님도 작심발언을 했다. 선승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라는 문경 봉암사의 조실 역할과 추대 문제였다.

“선에서 독참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선원에서 독참 문화가 사라졌다. 심지어 봉암사도 조실스님 자리가 오랫동안 공석이다. 조실이 없으니 법문도 소참도 독참도 없다. 봉암사 내에서 모시든 외부에서 모시든 이제 조실스님을 여법하게 모셔야 한다. 그런 후 조실스님은 직책에 맞게 대중법문하고 소참법문하고 수행자를 제접해야 한다. 그곳에서 정진하는 대중은 안거 동안 최소한 두 번은 입실해 질문이 있든 없든 조실스님과 독참해야 한다. 그럴 때 봉암사에 독참이 정착되고 선이 활기를 찾을 수 있으며 다른 선원들로 확산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봉암사 조실스님이 돼야 한다.”

오후 3시 시작된 좌담회는 2시간 동안 지속됐고, 저녁 공양 후 7시부터 9시20분까지 열띤 토론이 오갔다. 대다수 수좌스님들은 효담 스님의 발제에 공감했고, 새로운 형태의 안거가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현실적으로 총림이나 큰 선원이 어렵다면 일단 소수라도 뜻 맞는 이들을 중심으로 서로가 스승이 되는 선원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전국선원수좌회는 “한국선은 지금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보고 선원장스님들의 협조를 얻어 선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제도화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합천 해인사=이재형·윤태훈 기자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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