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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는 생활 아닌 수행문화” 일갈 무겁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0.11.23 10:25
  • 호수 1562
  • 댓글 0

전국선원수좌회 ‘선원문화’ 좌담회
수좌들 자신에게 던진 통렬한 성찰
‘지도·탁마’ 간과한 선수행은 한계 
활로 찾아 중생 이끌 선지식 나오길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뼈아픈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국선원수좌회가 개최한 ‘선풍진작과 선원 활성화를 위한 좌담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해인총림 소림선원장 효담 스님의 일갈이다. 작금의 선원·선문화에 고착된 문제점들을 과감히 드러내보자는 굳건한 의지가 배어있다. 발제문 제목도 ‘우리는 왜 모여 있는가?’이다. 자신을 포함해 선원에 방부 들인 수좌들을 향해 ‘왜 모여 있느냐?’는 비수 같은 자문을 던진 것인데, 한국선의 활로를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들린다.

효담 스님의 냉철한 진단 또한 이 시대 수행자들의 폐부를 꿰뚫는다. “안거는 생활문화가 아니라 수행문화입니다. 깨달음의 가치를 완성하고자 모였건만, 오히려 수행공동체가 단지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생활공동체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선풍진작을 위한 담론은 여러 차례 있었다. 가깝게는 2011년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가 주최한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대토론회’가 있었고, 멀게는 2004년 동화사에서 열린 ‘간화선 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의 담선법회가 있었다. 조계종 수행문화에 대한 장단점이 설파됐는데 결론은 ‘한국 간화선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였다. 그 이후 조계종 선원의 수행문화는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만이 답을 내릴 수 있는 물음이다. 해인사 소림선원 담론은 그 답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갔기에 더욱 더 의미 깊다.

소림선원 담론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 온 작금의 선원 문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선원에서 선어록과 경전을 보지 않는 풍토다. 두 번째는 앉아 있는 것이 선원 일과의 대다수인 좌선일변도의 수행 풍토다. 세 번째는 현행 선수행은 출·재가자를 포함한 공부하는 이들에게 만족할만한 감동과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문제를 관통하는 건 선지식과 제자 사이에 이뤄지는 ‘지도점검’ 부재다.

그 언젠가부터 “선 수행자는 경전과 어록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진리’처럼 굳어졌다. 선과 교를 두루 통달한 선교겸수의 스님이 선지식이라는 얘기를 누누이 하면서도 경전과 선어록을 들추지 말라는 건 자가당착이다.  

선어록은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후 정법의 안목을 구족한 선지식들이 나눈 생생한 지혜의 대화록이다. 선어록을 외면한다면 어디서 선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선의 일미도 모르면서 선 수행의 정도를 걷고 있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면벽수행만으로 불법과 선의 대의를 체득할 수 있으리라는 건 어느 선지식이 일갈했듯이 ‘환상’이요 ‘착각’이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선 수행에 매진하는 제자가 스승에게 물을 게 없다. 다소 비약하면 물어도 답해줄 게 없다. 사유하고 참구해야 할 과제가 없기 때문이다.

2010년대 전후 불교 저간에 이러한 물음이 회자된 적이 있다. ‘참다운 선지식이 있는가?’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고 해서 지도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도반과의 열띤 토론을 통해서라도 탁마하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름한 ‘이해’ ‘지혜’ ‘깨달음’이 부처님 법 즉, 경전과 일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철저히 살피지 않은 수행자는 중생교화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인다. 선의 정수가 녹아든 힘 있는 설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학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소참법문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자들을 위한 대중법문에서도 선의 요지를 명쾌하게 전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법상에서 전한 ‘사자후’가 ‘뜬 구름’잡는 소리 같다”는 비판만 떠안을 뿐이다. 선을 이해 못한 사람이 선을 전하면 그 선은 힘을 잃는다. 해인사 소림선원의 담론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국선원수좌회가 진단했듯이 “한국의 선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눈 밝은 선지식이 배출되지 않으면 ‘선의 대중화·세계화’는 요원하다. 아니, 존립의 근간마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전국선원수좌회가 선수행 문화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을 계기로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과 구체적인 실천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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