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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걸려든 명상산업

현대 종교는 국가와 자본의 관리와 지배를 받는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기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체제 하에 종교가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 전체를 자본의 먹잇감으로 삼은 신자유주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의 도구로 삼는다. 포드시스템처럼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이어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상품을 다양화하여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후기자본주의 시대가 된 것이다. 맹목적인 자아의 폭등, 폭주에 맞추고자 지구 위 유형·무형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상품화하고 있다. 

문화, 예술은 물론 종교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 체험의 영역인 종교는 역사, 문화, 사상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갖추고 있기에 자본의 타깃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세계 모든 종교적 명소는 관광 상품으로 전락했으며, 유명 종교인들의 언어는 지하철, 버스, 비행기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 새로운 기분을 맛보고, 현실을 잊어버리며, 당장의 쓰라림을 전환하는 일에 명상도 선(禪)도 만트라도 무한 소비되고 있다. 자본의 통로인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확산, 재생산 되어 자본의 무한 증식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유명한 혜민 스님에 대한 논박을 접하면서 불교명상 또한 영락없는 자본의 포로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애초에 선을 포함한 명상이 예능 또는 산업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전통의 변형, 혹은 단절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지상주의에 매몰되면서 종교성으로부터 분리된 명상이 또 다른 소비재가 된 것이다. 자본의 마수에 걸려든 때부터 자본이 걸어온 길, 즉 대중매체를 통해 확실한 돈줄로 둔갑하며, 마침내 주식회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감했다. 단계적인 라이센스 공여와 프랜차이즈화, 명상테마파크, 명상박람회, 힐링산업 등 겉으로는 인간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제거시킬 것처럼 떠들지만 모든 것은 자본으로 귀결된다.

생각해보라. 어린 아이에게 싸우기 전, 친구와의 관계가 어땠느냐고 물으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럼 그전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하면 된다. 그러나 생존의 밧줄인 일터에서 해고당한 사람에게 해고 전에는 어땠느냐고 묻고, 그럼 가족과 단란하고 행복했던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되겠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명상의 자본주의화는 이러한 속임수를 가지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호모사피엔스가 창안한 상상의 구조물인 자본주의 그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그물에 포획된 인간은 존재의 기쁨을 빼앗기고, 오직 먹고사는 문제로 치환된 경제라는 개념이 불러일으키는 고통만이 배회한다. 

하여 근본번뇌인 무명을 제거하고 열반과 해탈에 이르는 모든 수행방편들조차 자본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다. 불타가 설한 것처럼, 오온이 실체임을 인식하는 인간의 오류를 깨우치지 않는 한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마음이 병이다. 매스미디어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들은 부유(浮遊)하는 인간의 번뇌가 원인이다. 그것이 과거 업종자의 발아이든 새로운 업의 발생이든 한 순간 업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행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삶이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에 돌이켜보면, 한 때의 꿈이었음을 누구든지 느낄 것이다. 

혜민 스님 사건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이 기회에 불타 당대에는 대두되지 않았던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승불교의 원래 목적인, 중생들의 삶인 세간, 삶의 환경인 기세간을 고치고 정화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모든 것이 돈이 우위인 세상, 종교도 대학도 심지어 사회운동도 돈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물론 의식주가 필요한 것처럼 일정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중도를 넘어선 순간, 늘 목격하듯, 앞세운 순수한 이념은 무너지고 만다. 주종, 선후, 본말이 전도되면 길을 잃는다. 세계가 고통 받는 지금 한가하게 산방한담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이 무지한 현실, 병든 세상을 향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임제의 할, 덕산의 방이 절실하다. 자, 누가 나설 것인가.

원영상 원광대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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