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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향한 간결하고 고귀한 언어사리

  • 불서
  • 입력 2020.11.23 11:06
  • 호수 1562
  • 댓글 0

‘선시 삼백수’ / 석지현 역주‧해설 / 민족사

‘선시 삼백수’

우리나라 문학계에 처음으로 선시(禪詩)의 세계를 개척해 알렸던 석지현 스님이 ‘선시 삼백수’를 펴냈다. 선의 정수를 가장 잘 드러낸 중국과 한국의 대표 선시 300편을 가려 뽑은 선시 모음집이다. 중국의 선시 219편, 한국의 선시 81편 등 선의 세계를 깊이 함축하면서도 시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엄선해 실었다. 선시 제목은 번역하지 않고 그냥 원제(原題)를 살렸고 원제가 없는 것은 원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 붙였다. 내용 안에는 각각의 선시에 대한 친절한 해석과 더불어 출전을 밝혔고, 용어 설명과 함께 독자들의 안목을 틔워주는 감상평도 실었다. 책 뒤에는 함축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선시의 작자를 소개해줌으로써 좀 더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징검다리를 삼도록 했다.

석지현 스님이 선시라는 새로운 장르에 눈을 뜬 것은 44년 전인 1972년 어느 날이었다. 선어록을 보면서 선의 언어 사용법이 대단히 파격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선승들의 게송(偈頌)에서 특히 이런 절묘한 표현들을 자주 발견하게 됐는데, 이참에 선승들의 시를 모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국내에 선시라는 장르가 시작된 계기였다. 

당시만 해도 선승들의 시는 게송(偈頌)이라고 불렀다. 게(偈)란 범어의 시가(詩歌)를 뜻하고 이를 한역한 것이 송(頌)인데 소리번역과 뜻 번역을 합친 것이 게송이다. 석지현 스님은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선승들의 게송을 모아 1975년 ‘선시(禪詩)’를 펴냈고 1997년에는 역대 선시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선시감상사전(禪詩鑑賞辭典)’을 펴냈다. 이번에 펴낸 ‘선시 삼백수’는 ‘선시감상사전’에서 발췌한 300수를 탄허강숙에서 강의하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과거의 번역과 주석, 감상 등을 새롭게 수정했다. 사전 발간 이후에 또 다시 새롭게 열린 안목을 대폭 반영했다.    

선(禪)은 언어문자와 논리를 초월한다. 그러나 언어문자를 버리고 그 세계를 표현하고 느낄 방법도 없다. 언어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선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압축된 언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선시다. 석지현 스님에게 선은 불교, 힌두교, 밀교, 기독교 등 국경과 종교를 넘나들던 그의 정신적 편력의 귀결점이다. 그래서 선시는 결코 쉽지 않다. 읽을 때마다 맛과 깊이가 달라지고 새로운 안목이 열리기도 한다. 앞서 설명한 선시의 이해가 나중에 또 고쳐지고 수정되는 이유다.

선시라고 한가지 면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직관력이 돋보이는 선지시(禪智詩), 논리와 철학적인 면을 강조하는 선리시(禪理詩),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선취시(禪趣詩), 선문답을 통해 극적인 격외의 체험을 읊는 공안선시(公案禪詩) 등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4종류의 선시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관통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이를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어야 선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 금나라 원호문은 “시는 선객에게는 선을 장식하는 비단 위의 꽃이요, 선은 시인에게 언어를 절제하는 절옥도(옥을 자르는 칼)”라고 말했다. 표현할 수 없는 선을 언어로 표현한 선시는 그래서 깨달음과 수행을 향한 가장 간결한 도구이다. 시끄러운 입을 닫고 직접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 저 손가락 같은 것이다 ‘선시 삼백수’를 통해 우리는 곧고 바른 손가락 하나를 얻은 셈이다. 2만9500원.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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