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 기준

기자명 성원 스님

자신만의 기준 가진 요즘 풍토
‘금강경’서 경계한 자기중심
혜민 스님 사태보며 쏟아내는
단편적 평가와 분노 안타까워

어린 시절 국민학교(당시에는 초등학교를 그렇게 불렀다)에서는 제식 훈련이 있었다. 군사 문화의 잔재라는 것은 오랜 후에야 알았다. 줄서기와 줄 맞추어 걷기를 반복해서 어린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모두 너무나 진지하게 연습에, 아니 훈련에 임했다.

당시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신 것은 기준이었다. 열을 지어 설 때도 기준이 어디인지, 걸을 때도 항상 기준이 어디인지 생각해야 했다. 어린 시절의 훈련 탓일까? 우리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잘 두지 않는다. 아니 두지 않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 기준은 주변 어디엔가 두고 거기에 맞추려고 한다. 좋은 점도 있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고 기준으로 설정한 기준의 잘못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모든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움직이며 세상을 맞추려 한다. 나는 이토록 당당한 그들이 좋다. 아니 좋아한다.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러움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정치적 견해는 물론이고 제법 학문적으로 밝혀진 내용들도 거침없이 새로운 자신만의 잣대로 재단하고 걸쭉한 말솜씨로 비난하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특히 역사를 보는 관점은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끔 ‘아, 저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동조할 때도 많은 걸 보면 다양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해 엄격히 경계하셨다.  ‘금강경’에서 수없이 강조하는, ‘아상·인상을 떠나야만 올바른 길을 볼 수 있다’고 가르치는 말이 바로 이 기준에 관한 말이다.

자신이 세상의 기준이라 생각하지 말라, 사람들이 단지 세상의 모든 가치적 기준이라 말하지 말라. 바로 이런 가르침이다. 하지만 2600년 전 메아리 울림이 귓전에 생생한데도 우리는 조금도 변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세계에서 괴로워한다.

며칠 전부터 현재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혜민 스님의 일상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쏟아지고 있다. 그 스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고 그러다 보니 고민 아닌 고민을 듣고 함께 나누기도 하며 염려하기도 했던 터라 더욱 세심한 관심이 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객관적으로 볼 때라고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견해가 아니라 대중들이 모두 공감하는 가치임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입장에서 재단하고 뚫어보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의 상황과 실체를 더 이해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고 자신이 단편적으로 얻게 된 정보에 너무 의존해 흥분하고 나아가 얼마간의 분노까지 표출하는 것을 보며 참으로 맘 아팠다,

성원 스님

언젠가 식당에서 누군가 혜민 스님임을 알아보고 식사 중인데 사인을 요구했다. 하지만 스님은 몇 명이고 계속 맞아주는 것을 보면서 ‘참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가끔 상대를 좋게 보게 되는 것이다. 또 한번은 새로 시작한 ‘코끼리’ 명상앱을 구축하고 콘텐츠를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강의료를 모두 넣고도 모자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고민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그날 그 스님이 나를 기만했을까? 문득 우리 눈에 나타난 모습만이 전부인양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세상일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뭐라 위로해드리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서 “보왕삼매론을 큰소리로라도 읽어보시라”고 했다. 나도 읽었다. 어쩌겠는가. 대통령도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자비하게 비난해버리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 말고 또 다른 기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했으면 좋겠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