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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 정기순(연지, 53) - 상

기자명 법보

도반 인연 따라 만난 봉화사
점안식에 자원봉사자로 참여
그 자리 함께할 수 있어 감사

연지, 53

어려서 할머니 손을 잡고 다녔던 곳이 동네에서 좀 떨어진 작은 절이었다. 쪽진머리를 곱게 빗어 올리시고 가장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하얀 고무신 닦아 탈탈 털어 신고 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겐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교는 나에게 당연함이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엄마와 함께 절을 다녔는데 딱히 좋은 줄 몰랐다. 예전엔 그랬다. 때가 되면 기도하고 보시하고 부적을 챙겨오는 일,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의 숙연이 있어서였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일, 저일로 마음이 힘들어지면서 찾은 곳은 절!

마음수행에 관심이 있었기에 나름 자기수행 한다고 할 때였다. 직업이 학습지 교사라 가끔 학부모와 아이들 상담을 하는데 지금의 도반도 그때 만났다. 서로 다른 절에 다녔지만 각자 들었던 법문 나누는 걸 우린 좋아했다. 법을 나눌 때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날 정도로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그 학부모가 다니던 절의 스님께서 갑자기 입적하셨다. 돌아가신 스님의 영가를 도반 스님이 계신 절에 모시게 되었다고 얼핏 전해 들었다. 나의 도반은 돌아가신 스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많이 힘들어했고,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당연하다는 듯 첫 재에 동행했다. 그게 하동 봉화사와의 첫 번째 인연이다.

동지를 며칠 앞둔 추운 겨울밤! 운전도 서툰 내게 밤길 가로등도 없는 시골 마을을 지나 산길을 굽이 돌아 올라가는 초행 운전은 정말 긴장되고 힘들었다, 그렇게 늦게 도착한 낯선 이들을 봉화사 사무장님은 따뜻한 미소와 정감 어린 목소리로 맞아주셨다. 사무장님은 “반가워요. 먼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라며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따뜻한 공양을 내어주셨다. 그 밤에 먹은 야식 공양이 얼마나 맛있던지…. 낯선 절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새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서도 내게 봉화사 공양은 언제나 ‘정답’이다.

다음날 봉화사 주지스님을 처음 뵈었다. 스님의 해맑은 미소가 참 인상적이었다. 재가 끝난 후 스님께 인사드리러 갔더니 주지스님께서 직접 차를 내려주셨다. 생전 처음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셨기에 나로선 굉장한 영광이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몇 달 후 봉화사에 부처님 점안식이 있는데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도반의 말에 공양 뒷바라지라도 할 겸 점안식도 구경할 겸 따라나섰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자원봉사구역은 공동 해우소! ‘헉! 내가 왜? 내 절도 아닌데….’ 분별심이 불쑥 올라왔다. ‘아니야, 어차피 왔는데 밥값은 하고 가야지.’ 얼른 생각을 바꾸고 힘차게 대답했다. “네!”

점안식은 웅장하고 대단했다. 지리산 인근 시골 산속에 자리한 도량인데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며칠 전부터 오신 분들은 물론이고 당일 아침까지 수백명의 신도님이 참석하셨다. 스님께선 미리 도착해 기도하고 자원봉사하는 신도들의 방까지 꼼꼼히 챙기시고 멀리에서 오신 분들이 서운하지 않게 공양도 직접 정성을 다해 챙기셨다.

나도 처음 본 음식들이 공양간에 차려졌다. 지리산 산사에서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갖가지 음식들이 정갈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올려졌다. 여느 최고급 호텔의 채식 뷔페 부럽지 않은 한상차림이었다.

점안식이 끝난 후 참석한 수백명의 신도님이 공양하는데 주지스님께선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며 인사해주셨다. 노보살님이 혹시라도 넘어질세라 손잡아 주시고 의자까지 손수 챙겨주시는 모습을 뵈며 흡사 효자 아들이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은 스님의 장삼 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며 장난을 쳐도 할아버지 미소로 기꺼이 함께 놀아주셨다.

나 역시 그날 하루만큼은 맡은 소임에 충실해야 했다. 봉화사 창건 이래 이렇게 큰 행사를 처음 했으니 사중에 물관리가 되지 않아 급하게 계곡물을 떠서 화장실로 나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변기가 막히면 뚫고 막히면 뚫고…. 지금 생각하면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수백 명의 뒤처리를 직접 챙겨야 하던 그때 일은 쉽지 않았다. 분별심이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는데, 그땐 그 자리에 차라리 내가 있어 감사했고 뿌듯했다.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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