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시대 상당법어, 소참법문, 대중법어(대혜선사가 많이 했음) 등 법문은 지혜를 열어주는 즉 언하대오케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독참도 오도의 아주 중요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선원도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좌선제일주의에서 조금만 보완해서 법어, 독참을 제도화하고 적어도 해제 때에는 선어록을 공부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어록은 휼륭한 선승들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당송시대에는 마조, 남전보원, 조주, 청원행사, 남악회양, 백장, 위산영우, 앙산혜적, 황벽, 임제, 운문, 동산, 원오극근, 굉지정각, 대혜종고 등 기라성 같은 선사들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재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송 후기-원대에 좌선제일주의로 흘렀지만, 하루에 6시간 이상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남송 시대 하루 4회좌선을 4시좌선이라고 하는데 모두 합해야 6시간을 넘을 수 없었고 특별좌선(禪七, 7일용맹정진) 등의 경우는 8시간 이상이 되었습니다. (새벽 2시경 기상, 밤 10시-11시 취침). 중국의 용맹정진은 우리나라처럼 전혀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루 3-4시간만 자고 좌선합니다.
원대의 대표적인 선어록은 몽산법어, 고봉선요 등이고 이 두 선어록은 우리나라에 선원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반면 선어록의 백미라고 하는 임제록은 조선시대 동안 거의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당-북송시대 상당법어 등 법문은 그 누그든 절대적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상당법어는 5일에 한번씩 있었습니다. 동시에 독참도 필수였습니다. 독참은 방장과 납자의 독대인데 개인지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대학교도 교수 면담 개인지도가 있고(사실 이것은 청규의 청익임), 위빠사나에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근기가 다르므로 독대방식을 채택했던 것입니다.
선사敎 선사敎의 修行法은
불교에선 초탈소멸해야 할 중섕의 근본요소인
念으로 이루어져 있어 불교의 해탈과는
그 방향이 맞지않다.
입으로
언어도단 무념무상을 말하면서 그 實修行은 정반대의 수행임을 알 수 있다.
늘 어묵동정 행주좌와 스스로들고
스스로 타파해야 하는(?) 화두,
화두의 목적은 분명 타파하기 위함 일것이다.
물론
화두일념이 타파되버리면 무념의
해탈경지가 맞다.
허나
그 화두타파는 아무리 논리적 분석해봐도
타파될 수없는 수행방편이다.
念으로 念이 어찌 타파 소멸되어 무념무상의 경지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한국 간화선 700년,
화두를 진정 타파한 者 그 누구인가?.
이제라도
한번뿐인 우리인생,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