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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남녀평등 가장 먼저 실현한 종교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기설(對機說)이라 한다. 여기서 기(機)를 조건이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큰 잘못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의 근기, 가르침을 내릴 때의 상황 등에 맞춰서 설해진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기 전의 근본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당시의 역사적 현실이라는 조건인 것이다. 부처님도 그 근본 조건이라는 제약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 근본조건에 맞게 말씀하셨기에,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부처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조건에 대해 분명하게 통찰하고, 그 상황에 주어진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역사적 현실이라는 근본조건을 넘어서 있는 근본적인 가르침들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는 그것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평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 당시의 인도사회는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처님도 그 당시의 조건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우선은 교단 안에서나마 사성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를 실현하셨다. 평등은 근본이요, 교단 안에서라는 것은 당시의 조건에 맞춘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정신을 잇는 불자들과 불교 교단이라면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가능하면 교단 안에만 실현되었던 평등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랬는가? 

여성 출가자, 즉 비구니의 문제도 바로 이런 시각에서 논의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여성 출가자를 받아들인 일은 불교를 넘어 종교의 역사에도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여성이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당시의 현실, 그것이 바로 여성 출가자를 받을 때의 기(機)이다. 그러한 근본 조건에서 부처님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덥석 여성 출가를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 출가자를 받아들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연출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여성 출가를 허용하는 대목에 발생했던 여러 일화들은 바로 그러한 연출이 아니었을까? 물론 고의적인 연출이 아니라 최초로 비구니가 되었던 분들의 장한 신심과 각오를 드러내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고, 거기에 뒷날 가섭존자에게 비난까지 받았던 아난존자의 도움, 그러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비구니를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사건을 보는 가장 핵심적인 시각이 되어야 할 것은, 여성을 신의 뜻을 피동적으로 전달하기만 하는 매개체로서의 무녀를 넘어서 여성을 수행 사제로 인정한 것은 불교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존재로 여성을 받아들인 종교는 불교가 유일했고,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할 수 있다. 그 큰 의미에 주안점을 두고 이 문제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비구니에 대한 많은 제약들은 부처님도 어쩔 수 없었던 그 당시의 근본적 조건이 끼친 제한이요, 또 그 뒤로도 오랜 동안 지속되어온 남존여비의 역사 속에 강화된 것들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야말로 교단 안에서 남녀평등의 정신을 가장 먼저 실현한 종교가 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를 확장해 교단 안에서의 남녀평등을 점차적으로 확대하고, 사회적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이 불교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계율이라는 것으로 변명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백장청규는 출가자의 생산노동을 금지하는 ‘계율을 넘어선 계율’을 전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수행과 노동의 일치라는 것을 통해 당시의 역사적 조건에 맞는 청규를 제창한 것이다. 그러한 위대한 선배의 발자취가 있다. 그러니 “평등이야 말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니 현실 속에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오늘의 청규를 세워봄은 어떠한가? 그를 통해 교단으로부터 사회로 확장되는 평등한 세계의 건설에 우리 불교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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