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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43칙 친전저사(親傳底事)

긍정적인 몸의 수행은 마음의 깨침

스승에게 정법안장 받은 것
몸은 수행 주체·깨침의 당체
선문서는 신심일여 지향해

승이 현사에게 물었다. “친히 전승한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현사가 말했다. “나는 사씨 집안의 자손이다.”

복주의 현사사비 설봉의존의 법사이다. 부용영훈(芙蓉靈訓)에게 나아가서 낙발하고, 개원사로 가서 구족계를 받은 후에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미투리를 신으며 밥은 겨우 기력을 유지할 정도만 먹으며 종일토록 좌선을 하여 스승 설봉으로부터 비두타(備頭陀)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유상종처럼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현사와 함께 지내고 잇던 대중은 현사가 ‘나는 사씨 집안의 자손이다’는 말에 의거해서만 쉽게 이해하고 쉽게 알아채는 정도로 맞섰을 뿐이다. 그러나 그 승의 역량은 마치 자식이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하여 이해한 것과 다름 없었기에 현사의 가풍을 계승하여 나아갈 만한 것이었다. 그런 정도의 경지라면 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서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 각자 자기의 앞길을 그대로 가는 모습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승이 질문한 ‘친히 전승한 것’이란 현사사비가 그 스승인 설봉의존으로부터 역대조사가 전승한 정법안장을 몸소 전해 받은 것을 가리킨다. 흔히 정법안장을 전승한다는 것은 부처와 부처 그리고 조사와 조사 사이에서 성취되는 까닭에 제3자가 엿볼 수 없는 내용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자신이 친히 깨침의 경험을 통하여 스승에게서 인가를 받고 전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친히 전승한 것’이란 그 어느 누구에게나 함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이치를 질문한 것이다.

이 경우에 그와 같은 질문을 한 승의 경지는 바로 현사의 답변을 통해서 짐작해볼 수가 있다. 현사는 ‘나는 사씨 집안의 자손이다’고 말해주었다. 현사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가지고 답변한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질문에 대하여 제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답변의 무게를 조율한다. 현사의 답변은 질문한 승에 대한 신뢰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현사가 자신의 모습을 아무런 비유와 상징없이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현사는 질문한 승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사씨 집안의 셋째 아들이었던 현사는 가장 단순한 답변을 통해서 가장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여타의 대중은 그저 현사가 민 지방 출신의 사씨 성을 가진 납자였을 뿐이라는 것에 막혀서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장 비근한 사실에 대하여 가장 심오한 의미의 문답이 가능하다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아니,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살림살이 가운데서 드러내주고 이해시켜주는 구조가 바로 선문답의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 답변에 대하여 승은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다. 문답은 그것으로 충분하였기 때문에 승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미주알고주알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사의 입장에서도 또 다른 답변을 동원할 이유가 없었다. 현사는 출가한 승려 이전에 이미 어엿한 사씨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제아무리 마음공부를 소중하게 간주한다고 할지라도 현재 그 자리에서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잠을 자고 도를 닦는 수단으로서 바로 그 육신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 육신은 이미 도구의 의미로만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주체이고 깨침의 당체이며 정법안장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동가풍에서는 몸으로 사유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 만큼 가장 긍정적인 몸의 수행은 마음의 깨침에 다름이 아니다. 스승으로부터 정법안장을 전승받은 것으로 가장 친절한 것이란 깨침과 인가이다. 그것은 마치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육신에 대한 믿음처럼 견고하다. 이런 까닭에 선문에서는 항상 몸과 마음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동일시하여 신심일여(身心一如)의 입장을 지향한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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