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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목조불좌상’ 심층연구 기대 한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0.12.07 09:33
  • 호수 1564
  • 댓글 0

일제강점기의 시름 보듬고
한국불교 자존심 지킨 불상
조선 초 조성 고구 지속하면
‘보물’ 지정 가능성 매우 높아

조선시대 스님들의 도성출입 금지 조치가 해제된 1895년 즈음, 불교계 지도자들은 불교의 근대·대중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 밖의 원흥사(1899)와 사대문 안의 각황사(1910)가 도심 한복판에 들어선 건 새로운 불교시대를 열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결실이었다.

고무적인 건 당시 지도자들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원대한 꿈을 설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총독부나 일본의 불교계가 아닌 ‘조선의 불교도’가 한반도 전역의 사찰과 스님들을 직접 관리 운용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졌고, 그 의지는 총본산 건립 원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1938년 10월 서울 종로에 대웅전이 낙성됐다. 총본산의 사명은 1940년 태고사로 확정됐고, 이때 종단명도 조계종으로 정해졌다. 이후 태고사는 불교정화 운동을 지켜본 후 1955년 조계사로 개명됐다.

조계사 대웅전은 전통적인 고졸미를 지닌 최고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골격은 정읍에 있던 보천교의 십일전을 그대로 썼다. 정읍과 서울의 거리, 해체·이운·조립 과정의 난관을 생각하면 그 시도 자체가 정성이요 원력이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겨 실의에 빠진 대중의 심중에 ‘독립과 자주’라는 희망의 씨앗을 심은 대작불사였다.

총본산 건립에 나선 불교계 지도자들은 대웅전에 봉안할 부처님을 어떻게 조성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세우고, 시름에 젖은 민중과 쇠락해 가는 나라를 지탱해 줄 부처님을 봉안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고뇌의 결과 영암 월출산 도갑사의 목조불좌상을 이운해 봉안했다. 이 사실은 조계사 영산회상도의 화기(畵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갸름하면서도 작은 얼굴, 두툼한 어깨와 맵시 있는 허리, 여기에 남성미까지 풍기는 이 불상은 ‘황금비율 몸매’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 부처님의 조성연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는데 그래봐야 조선후기 혹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그쳤었다.

최근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 부처님이 조선 세조의 발원에 의해 조성됐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나온 것이다. 유대호 조계종 총무원 행정관은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으로 본 한국미술사’ 학술대회에서 ‘조선 전기 도갑사 불상군의 특징과 제작 배경’ 논문을 발표하며 ‘조계사 목조불좌상’ 연원을 밝혔다.

이 논문에 따르면 유리건판에 담긴 도갑사 불보살상은 모두 9존으로 불상 3존과 보살상 6존인데, 조선후기 제작으로 추정되는 주존불 석가여래좌상을 제외한 나머지 불보살상은 모두 조선전기 제작 양식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조계사의 목조불좌상이 도갑사의 불보살상과 유사한 양식을 보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도갑사의 부처님이 1938년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사실에 입각하면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조선 전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유 행정관은 도갑사 불보살상이 세조3년(1457), 불경 언해에 참여했던 묘각왕사 수미 스님이 도갑사 규모를 확대할 때 봉안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태7년명 복장발원문과 후원자 면면을 고려 한 유 행정관은 세조가 즉위 이후 왕위에 대한 정당성과 왕실 안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도갑사 중창을 도왔다고 보고 있어 ‘조계사 목조불좌상’의 조선초기 조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 보면 ‘조계사 목조불좌상’은 보물급이라 할 수 있다. 사찰과 미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망라해도 15세기 불상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올해 6월 조계사 ‘목조불좌상'과 조성 시기가 비슷한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보물 제2067호로 지정된 것도 희소성에 기인한다.

유 행정관의 연구에 이은 심층적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불교 1번지’ ‘조계종 총본산’에 봉안된 불상 아닌가. 일제강점기의 시련과 불교정화, 종단개혁 등 조계종의 역사와 함께 한 부처님이다. 그리고 80여년 동안 조계사를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온 부처님이다. 2006년 11월 조계사 대웅전에 새로운 삼존불이 봉안된 후 어디론가 떠났을 부처님이었지만, 불자들의 호소와 간청으로 대웅전 수미단 오른쪽 아래에 지금도 고요히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다.

 

[1564호 / 2020년 12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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