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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사 운동‘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기자명 이병두

고려시대는 ‘불교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불교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문종은 대각국사 의천을 비롯한 아들 셋을 출가시켰고, 숙종은 둘 그리고 인종은 한 명 등 수많은 왕자들이 출가 수행자가 됐을 뿐 아니라 인주 이씨 가문의 이자연 등 문벌귀족 가문에서도 아들을 출가시켜 불교세력과의 연결을 꾀했다. 교단 입장에서는 왕실·문벌 귀족 가문에서 출가한 스님들을 통해 막대한 물적 지원을 받고 장경 편찬 불사를 추진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거뒀지만, 외부 세력에 흔들리게 되는 부정적 효과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의종 24(1170)년에 일어난 무신정변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고 불교계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왕실·문벌귀족들에게서 지원을 받아 풍부한 사원경제에 안주하며 중생들을 외면하던 귀족불교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 사찰에서는 무신 정권에 저항하기도 하였지만 철저한 탄압을 받아 더 이상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불교계를 완전히 장악한 무신 정권은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유리한 쪽으로 불교계 재편을 기도하는 한편으로 최충헌이 아들을 왕사 지겸(志謙)에게 출가시켜 불교 교단과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고 지원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정변 이전의 ‘정불(政佛)유착’ 관계를 끊지 않았다.

결국 고려 전‧후기를 막론하고 불교 교단은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끊지 못하면서 ‘경제적 지원’과 ‘보호’를 얻어내는 대신에 ‘권력에 예속’되면서 자율성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가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확립하자!”며 수선사와 백련사 등 여러 곳에서 결사 운동을 일으켜 성공하지 못했다면 한국불교는 그대로 무너져 버렸을 수도 있었다.

수선사와 백련사 결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신정권의 실권자 최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지원한 측면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결사 운동을 주도한 지눌과 요세 스님이 귀족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던 지방 향리(鄕吏)층·독서층[지식인 계층]들에게서 넓은 지지를 받고 그들의 적극 참여와 불교계 투신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사운동이 가져온 효과는 그 범위가 넓고 깊었다. 무엇보다도 출가자 중심에 머물지 않고, 지방의 지식인을 중심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지성을 열고 세속의 서민 대중에게 적극 다가가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지향하여 결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배경과 이유를 다시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중앙 정치권력과 연결되면서 결사의 취지가 퇴색하게 되어 고려 왕조 말기의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던 점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재 불교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종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독신 출가수행자가 중심을 이루는 불교는 신도 감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출가자가 감소하여 다른 종교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산중의 절을 지킬 스님조차 모자라는 상황까지 가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오랜 전부터 비슷한 어려움을 당한 유럽의 가톨릭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신부와 수녀들로 그 자리를 채우면서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의 방식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맞는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고려시대의 수선사‧백련사 결사와 수십 년 전의 봉암사 결사를 이은 다양한 결사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정치‧문화‧사회‧종교 등 모든 분야의 혁명은 변방에서 시작되었듯이, 이 결사 운동도 중앙의 정치‧경제‧문화 권력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숨을 걸고 출가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확립하겠다!”는 결사(決死)의 서원과 의지를 가진 참여자들만이 결사(結社)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64호 / 2020년 12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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