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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제44칙 판치생모(板齒生毛)

달마가 보여준 ‘마음의 침묵’

“판치생모”라 답한 조주 뜻엔
9년 간 면벽 좌선으로 이빨에 
이끼 난 ‘달마’ 위대함 담겨있어

승이 조주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앞 이빨에 터럭이 난 것이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如何是祖師西來意]’라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공안으로 전승되어 왔다. 조사는 물론 중국 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를 가리킨다. 중국을 기준으로 볼 경우에 달마의 출신국 인도는 서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마가 중국에 도래한 근본적인 의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불교가 내세우고 있는 궁극적인 의미를 질문하는 것이다. ‘조사서래의’에 대한 최초의 문답은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두 사람이 숭악혜안(嵩嶽慧安) 국사를 방문하여 질문한 것에서 보인다.

그로부터 ‘조사서래의’는 중국의 조사선 가풍에서 가장 궁극적이고 보편적으로 조사선을 지향하는 물음으로 정착되었다.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자기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다. 때문에 조주는 ‘앞 이빨에 터럭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자어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한다. 여기에서 판치는 사람의 이빨 가운데서 흔히 대문니라고 부르는 앞 이빨을 가리킨다. 이빨에 터럭이 났다는 말은 비상식적인 현상이다. 일반의 사람에게는 비상식적인 내용일지라도 진정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판치에 터럭이 난다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고 특이할 것도 없으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현상이 된다.

선종은 좌선종(坐禪宗)의 준말이다. 그만큼 좌선이 중심이다. 선종이라면 당연히 좌선을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이며 핵심으로 지향한다. 달마는 바로 그 중심에 있다. 달마가 서인도에서 중국에 도래해 단적으로 보여준 가르침이 바로 좌선이다. 굳이 언설이 아니더라도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인 무기로서 좌선을 제시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달마는 소림사에 앉아서 9년 동안 면벽좌선을 했다. 좌선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달마는 앉은 채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계속하여 구년에 걸쳐 좌선을 했다. 이 경우에 좌선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체험으로서 몸은 똑바른 자세로 앉고 마음은 오롯하게 공안에 집중하며 입은 묵묵하게 침묵을 지키는 수행으로서 분별을 초월한 행위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침묵하며 수행하느라고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입을 다물고 있었던 까닭에 그 모습을 이빨에 이끼가 나고 곰팡이가 피었다는 말로 나타냈다. 그것을 가리켜 판치에 터럭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것이 달마에게 나아가서 침묵이라는 무분별로 수행하는 납자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분별심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이해되지 못하는 현상이다. 더욱이 엉뚱하게 수수께끼와도 같은 답변에 대해 적이 놀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주의 경우에는 지극히 자비로운 답변으로 승을 일깨워준 것이었다. 그것은 질문한 승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그러한 답변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서 언어유희로 얼버무리려는 행위도 아니었다. 조주는 이미 침묵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었다. 침묵이란 바로 달마가 보여준 특유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달마가 구년면벽하며 지냈던 행위에 대해 두 가지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나는 면벽구년의 모습이야말로 오롯하게 오뚜기처럼 앉아서 수행하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면벽구년의 모습은 고요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언설도 내뱉지 않는 청각적인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한다. 달마가 보여준 좌선의 이미지가 앉음새의 시각적인 모습과 조용한 침묵으로 연결되는 청각적인 두 가지 행위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런 만큼 좌선은 몸의 앉음새만이 아니라 망상을 피우지 않는 마음의 침묵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64호 / 2020년 12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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