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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떠돌이 수행자를 교화하다

고통과 행복은 분명히 있다

고통과 행복 관한 관념적 질문
연기적 관점에서 바르게 설명
관념세계를 따로 만들어 혼란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 방해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혹은 부처님은 사상가인가 종교가인가? 이런 질문들이 예전부터 던져졌다. 불교를 종교로 보기에는 철학적 체계가 그 어느 철학보다 치밀하다고 말하거나, 부처님 역시 종교가의 면모도 있지만 사상가, 철학가의 면모가 뚜렷하다는 평가도 있어왔다. 과연 부처님은 철학가일까, 종교가일까.

부처님께서 꼬살라국의 사왓띠(Sāvatthi)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떠돌이 수행자 띰바루까(Timbaruka)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질문을 하게 된다. 이 대화는 ‘상윳따니까야’ 2권에 실려 있다.

[띰바루까]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신이 만든 것입니까?
[부처님]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습니다.
[띰바루까] 그렇다면,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
[부처님] 그렇지 않습니다.
[띰바루까] 그렇다면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 그렇지 않습니다.
[띰바루까] 그렇다면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부처님] 그렇지 않습니다.
[띰바루까] 그렇다면 괴로움과 즐거움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 띰바루까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띰바루까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있는 것입니다.
[띰바루까]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께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 띰바루까여, 나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보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참으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압니다. 띰바루까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봅니다.

우리는 고통과 행복사이를 오가는 삶을 산다. 고통만 경험하지도 않고 행복만 경험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띰바루까는 이 고통과 행복을 누가 만드는지를 갖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에 부처님은 누가 만드는 것도 아니며, 원인이 없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라고 답한다. 나아가 그렇다면 고통과 행복이란 원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부처님은 고통과 행복이 있다고 답한다. 흔히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사상에 따르면 어떤 것도 환상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부처님은 무아(無我)를 말씀하셨으니, 고통과 행복을 경험하는 주체가 없다는 말이 되고, 그렇다면 고통과 행복이 사실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처님은 고통과 행복은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답하고 계신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띰바루까의 질문도 그렇지만 무아를 철학적이고 사변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행복을 관념화시켜 버리고 만다. 이는 부처님이 경계하신 바이다.

이러한 대화 이후에 이어지는 대화에서 띰바루까가 “부디 괴로움과 즐거움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하게 된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붓다] 띰바루까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동일하다’고 그것이 시작부터 존재하는 자라고 주장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다르다’고 그것이 괴로움을 받게 되는 자라고 주장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뒤에 설하는 내용이 연기의 가르침이다. 즉 이 이야기는 띰바루까는 관념적 차원에서 질문을 한 것이고, 부처님은 이러한 관념적 질문은 현실의 고통과 즐거움을 바르게 알고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살면서 관념의 세계를 따로 만들어 혼란스러워 한다. 부처님은 이것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띰바루까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64호 / 2020년 12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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