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1000여 선승 중 좌선하다 깨달았다는 이가 있나”
“전등록 1000여 선승 중 좌선하다 깨달았다는 이가 있나”
  • 법보
  • 승인 2020.12.11 13:27
  • 호수 1565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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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화 민족사 대표 기고

당송 시대에 법문은 의무…좌선은 개인 시간 여하·능력
백장선사도 청규 제정하면서 하루 좌선시간 규정 안 해
‘남악마전’ 공안은 좌선일변도로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
좌선 제도화는 후대 정립…방장 제접 능력 부족과 관련
한국의 선원 내부 모습. 겨울과 여름 안거 때면 2000여명의 스님들이 선원에서 정진을 한다.
한국의 선원 내부 모습. 겨울과 여름 안거 때면 2000여명의 스님들이 선원에서 정진을 한다.

전국선원수좌회(의장 선법 스님)가 11월16일 합천 해인사에서 오늘날 선원 수행 풍토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활로를 찾기 위해 개최한 좌담회가 큰 화제가 된 가운데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12월11일 선의 황금기라는 당송시대와 비교를 통해 한국 선원의 근본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윤 대표는 ‘당송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저술해 불교평론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무자화두 10종병에 대한 고찰’ 등 논문이 있다. 편집자

현재 우리나라 선원은 ‘좌선제일주의’, ‘좌선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선원에 따라서 적게는 하루 8시간에서 많게는 12시간씩 좌선하고 있다고 한다. 간화선이 이렇게 좌선 제일주의로 흐른 것은 남송 후기~원대이다. 조주·백장·임제·운문·대혜선사 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탄생했던 당송시대 선원총림의 좌선 시간과 비교하면 적어도 1.5배 이상에서 2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좌선 시간 대비 당연히 확철대오한 선승이 더 많이 출현되어야 하겠지만, 아직 정법안장을 갖춘 선승은 출현하지 않는 것 같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필자는 그 하나의 방법으로 선이 가장 융성했던, 유명한 선승들이 가장 많이 출현했던 당송시대(특히 당, 북송시대)와 비교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의 근본적이고도 제도적인 문제점을 거론해 보고자 한다.

최초로 선원총림과 청규를 제정한 선승은 백장회해 선사(720~814)다. 그 중요한 내용이 ‘전등록’ 백장회해 장(章) 부록 선문규식과 ‘선원청규’ 백장규승송(百丈規繩頌) 등에 전해 오는데, 좌선에 대해서는 많이 하든[上] 적게 하든[下] 규정하지 않고 각자 자율에 맡겼다. 즉 프리(Free)였다. 하루에 몇 시간 좌선하든 그것은 각자의 능력에 맡겼다. 그러나 법문, 독참, 청익은 필수였다. ‘전등록’ 백장회해 장(章)과 ‘선원청규’ 백장규승송의 내용을 보도록 하겠다.

입실(入室, 독참)과 청익(請益, 스승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함) 외(즉 좌선)에는 학자(學者, 수행자, 납자)의 근태(勤怠,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일임(一任)한다. (좌선은) 많이 하든(上) 혹 적게 하든(下) 그것은 정한 것이 없으니 일정한 제한에 구애(常準) 받지 말라. 그리고 선원[闔院]의 모든 대중은 아침에는 조참법문을, 저녁에는 모여 만참을 들어야 한다(‘전등록’ 6권, ‘백장회해’장 부록, ‘선문규식(禪門規式)’. “除入室請益, 任學者勤怠, 或上或下, 不拘常準. 其闔院大衆, 朝參夕聚.”(대정장 51권, p.250c)

이와 같이 좌선은 각자 개인의 시간 여하, 능력 여하에 맡겼다. 부지런하고 정진력 있는 사람은 많이 하고 그렇지 못하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은 적게 해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송시대 장로종색 선사가 편찬(1103년)한 ‘선원청규’ 10권에 실려 있는 백장규승송(百丈規繩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원청규’는 현존하는 청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청규로 선원의 옛 모습을 가장 잘 전하고 있는 청규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좌선에 대해서는 하루 몇 시간 좌선해야 한다는 문구나 조항, 규정이 전혀 없다. 필자가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탐구하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좌선 시간에 대한 규정이 일체 없다는 것이었다.

왜 백장선사가 청규를 제정하면서 하루 좌선 시간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인가? 적어도 최소 하루 몇 시간 이상은 좌선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어야 하는데, 각자 자율에 맡겨둔 채 제도화,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반야지혜 중심의 조사선과 공안선의 오도(悟道) 시스템에서, 좌선은 법문이나 독참 대비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했다면 청규에서 제도화하지 않았을 까닭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백장선사나 장로종색 선사(북송 말 ‘선원청규’ 편찬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당시 선승들의 일반적인 생각, 선원총림의 제도,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조사, 공안선의 핵심은 반야지혜, 공·무집착의 성취였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좌선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법문, 독참, 청익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좌선보다는 법문·독참·청익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문(정법안, 반야지혜 관련), 독참, 청익(참구 지도 관련)은 조사, 공안선의 오도(悟道) 시스템으로 선의 안목과 반야지혜, 그리고 정법안장을 갖추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사항이었다. 이것은 방장이 직접 담당해서 제접, 지도해야 할 사항이었고, 납자 개인의 자율에 맡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다만 좌선은 그 방식과 방법 등이 거의 정해져 있고 각자 자율에 맡겨도 별문제가 없었으며, 승당(僧堂)의 책임자인 수좌가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악마전(南嶽磨磚)’의 공안은 좌선 일변도에 대하여 일갈하고 있는 공안이다. 널리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남악회양은 제자 마조도일이 매일 같이 앉아서 좌선에 매달리고 있자 그를 좌선 일변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벽돌을 가지고 그가 좌선하고 있는 암자 앞에 가서 갈았다. 마조는 스승의 모습을 보고 “스님, 벽돌을 갈아서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하고 묻자 남악은 “거울을 만들려고 그러네.” “아니 스님(이 노장이),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드신다는 겁니까?” 남악이 말했다. “맨날 가부좌하고 앉아 있다고 해서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건가(坐禪豈得成佛耶)?” “스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하겠는가, 소를 쳐야 하겠는가?”

중국 10대 선종 사찰의 하나인 항주 영은사.
중국 10대 선종 사찰의 하나인 항주 영은사.

남악마전의 공안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즉 좌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좌선 일변도’의 수행방법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다. 수레(좌선)를 칠 것인가? 소(마음)를 칠 것인가? 좌선 일변도는 간화선보다는 지관타좌(只管打坐, 오로지 좌선)의 수행법인 묵조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 ‘전등록’에 수록되어 있는 1000여명의 선승 가운데 좌선하다가 깨달았다는 선승은 찾아보기 드물다. 언하대오 즉 선문답이나 법거량을 통해서, 또는 향엄격죽, 영운도화 등의 오도기연(悟道機緣)과 같이 사물의 변화를 보는 순간에 깨달았고, 좌선하다가 깨달았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좌선 중심, 좌선 제일주의로 흐른 것은 사시좌선(四時坐禪), 즉 하루 4회 좌선이 제도화되는 남송 중기나 후기(1180년대~125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하루 4회 좌선(새벽, 오전, 오후, 저녁)을 규정, 제도화했는데, 특히 남송말-원대에는 좌선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몽산화상어록’인데 몽산화상은 오로지 앉아서 무자화두를 참구하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몽산화상의 영향으로 점점 좌선 제일주의로 흐르게 되었고, 근현대, 특히 최근에는 더욱더 오로지 지관타좌(묵조선), 좌선 일변도가 되었다.

청규에서 사시좌선에 대한 규정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남송 말인 1264년에 편찬된 무량종수선사의 ‘입중수지(入衆須知)’와 1274년에 유면이 편찬한 ‘총림교정청규총요(일명 함순청규)’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이른 것은 일본 선승 도겐(道元)이 편찬한(1254년) ‘영평청규’ 판도법(辦道法)이다. 사시좌선(四時坐禪)은 효신좌선(새벽), 조신좌선(오전), 일포좌선(오후), 황혼좌선(저녁)인데, 전체 좌선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6시간을 넘지 않았다. 사실은 5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남송 후기-원대의 선종은 한마디로 선의 끝물, 말기였다. 우리나라 선은 남송 후기-원대 선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원대 총림의 두드러진 특징은 안거(결제) 때 선원에 능엄단(楞嚴壇)을 차려 놓고 매일 같이 하루 3회씩 능엄주를 독송했다. 하안거 2일 전인 4월13일부터 시작하여 해제 2일 전인 7월13일에 마쳤다. 한때 우리나라 선원에서 능엄주가 크게 유행한 것은 100% 원대 선불교의 영향이다.

남송~원대에 와서 좌선 중시, 또는 좌선 제일주의로 흐르게 된 것은, 조사선, 공안선이 흥성했던 당, 북송시대에는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법문, 독참 중심에서 좌선을 중심이 된 것은 방장의 법문 능력 부족, 독참, 청익 등 납자 제접 능력 부족과 매우 관련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남송 후기~원대에는 방장이 총림을 비우기 일쑤였다. 수행 납자들을 제접, 지도, 점검해주어야 할 책무를 갖고 있는 방장화상이 정치인들, 관료나 사대부와의 교류, 회동으로 밖에 나가 있는 일이 많았다. 방장의 잦은 외출은 법문 능력과 독참 능력을 저하시키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고 이로 인하여 방장 스스로가 법문 기피 현상, 독참, 청익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물론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남송 말기의 시대적, 정치적인 영향(남송 멸망, 元의 대두), 그리고 불안한 사회상과도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방장의 역할과 책무는 청규에서 명문화하고 있는 것처럼, 법문, 독참, 청익 등 납자 제접과 지도를 통하여 깨달은 부처나 조사로 만드는 일이었는데 방장의 외출이 많아지다 보니 상당법어 등 법문을 건너뛰게 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고, 동시에 독참이나 청익도 거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한 예로 방장화상이 귀사하게 되면 납자들은 방장화상을 배알하고 독참이나 청익을 청할라치면 방장화상은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하게”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런 분위기로 인하여 방장의 납자 제접이나 지도는 사실상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이것은 결국 독참, 청익이 시행되지 않는 ‘독참 상실’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훨씬 후대인 청말의 문헌이지만 의윤홍원(儀潤源洪)의 ‘백장청규 증의기(證義記)’에는 “요즘 제방 선원 가운데 총림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입실(독참)이 시행되지 않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신찬속장경 63권 p.414)”라고 한탄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독참은 선병, 공안참구의 병통을 점검, 제거해주는 오도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다. 방장이 칼날 같은 안목, 살인도(殺人刀, 把住)와 활인검(放行)으로 납자의 병통, 공안 참구의 문제점 등을 지적, 제거해 주는 것이 핵심인데, 방장의 독참, 법문 능력 부족은 결국 ‘오로지 앉아 있으라’고 하는 좌선 강조, 좌선 일변도로 흐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도 납자들도 그런 문제에 직면, 고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뇌한다는 것은 구도정신이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선원도 당송시대 선원의 오도 시스템인 법문, 독참, 청익을 재생시켜야 한다고 본다. 법어와 독참은 보름에 한 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있어야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방장화상이나 조실스님을 찾아가서 묻는 청익은 납자가 요청하면 언제라도 시간을 내서 응해야 한다. 이런 제도는 이미 대학교에서도 행해지고 있는데, 강의는 법문이고 독참은 상담, 카운슬링이다.

그렇다고 좌선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좌선은 회광반조를 통하여 산란(散亂)과 도거(掉擧) 등 잡념과 번뇌 망상을 잠재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적어도 해제 때에는 ‘임제록’ ‘무문관’ ‘벽암록’ ‘육조단경’ 등 몇 가지 어록은 제창(提唱, 강독과 법문)해야 한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도 좌선 중이나 선당 내에서는 경전이나 어록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외 시간에는 마음대로 장경각에서 대출하여 볼 수 있었다. 경전이나 어록을 보지 않으면 상당법어 등 체계적인 선법문, 선사상에 맞는 법문을 할 수가 없고 언어소통 부재로 납자를 지도하기도 어려워진다. 10년만 절차탁마하면 정법안장을 갖춘 선승이 출현할 것으로 본다. 좌고우면하다 보면 결국 자율방목선(自律放牧禪)이나 방치선(放置禪)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창화 민족사 사장
윤창화 민족사 대표

선원총림(특히 唐代)은 선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완성시키기 위한 전문적인 수도장이다. 사후 왕생극락이나 현세의 이익을 기원하는 기복적·종교적 기능의 장소가 아니다. 어리석은 중생을 전인적 인격자인 부처[佛]로 만들고, 불교적 바탕이 전혀 없는 범부를 위대한 조사(祖師)로 만드는 성불작조(成佛作祖)의 공동체이다.

[1565호 / 2020년 1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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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 2021-01-03 21:51:03
이런 글은 한국의 간화선 전통만을 고려하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시대인가? 누구든지 원하면 한글로된 초기경전을 읽고 생각할 수 있다. 즉, 부처님의 원음을 공부할수있다는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배울수 있는데, 깨달았는지 불분명한 한참 후대의 중국스님들의 주장들을 담은 조사어록을 기준으로 간화선을 한다는둥, 입실, 청익, 법문을 한다는등등의 말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윤창화님의 글은 현재 한국간화선의 좌선일변도의 수행방식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일정부분 의미가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아니다.

사실, 한국불교의 가장큰 문제는, 선방의 좌선도 아니고, 극락왕생 기복도 아니라, 바로 '붓다를 모른다는 것'이다.
출가자도 모르고, 재가자도 모르고.

순수의식 2021-01-01 21:26:02
오직 견성만 말 할 뿐 선정과 해탈은 논하지 않습니다
조계종 종주인 혜능은 미국에 팔아 먹고
다시 역수입 하고 있습니다

선진 2020-12-27 12:30:01
윤창화대표님 말씀 공감합니다

땡중 한마디 2020-12-24 12:24:20
대혜스님이 묵조사선을 그리 비판했는데
지금 선방에서는 대부분 묵조선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아니고 대한불교 조동종이다.

간화선의 종지라면 면벽할게 아니고
대좌하고 주경야선해야 맞다.
지금 선방에는 활발발한게 하나없다.
물론 안그런 스님도 계시겠지만
공양물 편하게 받아드시며 따뜻한 선방에서
그거 소화시키느라 앉아서 졸기 바쁘다.

윤창화대표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2020-12-22 11:53:28
살아왔으면서 배운게 없나요?
그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습니다...만.,
무엇이 저것이며 이것이고 그것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