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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스님을 보내며

기자명 심원 스님

아래 문장은 원효 스님의 저술인 ‘발심수행장’의 한 구절이다. “한 시간 한 시간 흐르고 흘러 금새 하루가 지나가고/ 하루하루 옮겨가서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며/ 한 달 한 달 바뀌어서 홀연히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고/ 한 해 한 해 지내다 보니 잠깐 사이에 죽음 문턱에 마주하네.”

벌써 12월, 2020년 경자년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뒤돌아 볼 시점이다. 올 한 해 마음에 가장 깊게 새겨진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 한다면, 필자에게 올해의 사건은 ‘도반 스님의 죽음’이다. 며칠 후면 49재가 돌아온다.

같은 산중에 출가하여 행자 시절을 함께 보내고 한날한시에 계를 받고, 같은 강원에서 한 반이 되어 공부했다. 행자 도반이자 수계 도반이며 강원 도반이었다. 그 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때로는 곁에서 때로는 멀찍이서, 중노릇 잘하자며 서로를 의지하며 경책했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일생 동안 그는 남들보다 몇 배나 치열하게 살았다. 전심전력으로 포교하고 열정을 다해 후학을 지도했다. 그런 도반이 1년 남짓 투병 끝에 세연을 접었다.

행자시절, 필자와 도반 스님은 나란히 앉아 ‘발심수행장’을 열심히 외워서 강을 받쳤다. 갓 스무 살의 청춘에 “…잠깐 사이에 죽음 문턱에 마주하네”라고 한 그 의미를 알기나 했을까?

원효 스님의 글은 다시 이어진다.

“부서진 수레는 가지 못하고 늙어 무너진 몸은 수행할 수 없다네. …이 몸엔 반드시 죽음이란 끝이 있을진대 다음 몸은 어찌할꼬… 급하고 또 급하지 아니한가!”

그러면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별역잡아함경’ 제5권 4번째 소경 (No.87)에 답이 있다.

어영부영 한 세월 허비하고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늙고 쇠했습니다. 옛적부터 온갖 나쁜 짓만 했을 뿐 복을 짓거나 선을 닦지도 못했으며, 또 두려움을 여의어서 구원받는 법도 행하지 못했습니다. 거룩하신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셔서 저로 하여금 목숨을 마치면 구원받을 집과 귀의할 곳과 도피할 곳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치열하니, 무엇을 치열하다고 하는가?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그것이니, 이 때문에 마땅히 몸으로 착한 일을 닦아야 하며, 입과 뜻으로도 그렇게 해야 하오. 그러나 그대는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한 일을 전혀 닦지 않았소. 그대가 지금이라도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한 일을 닦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대의 건너는 배이며, 더 나아가서는 죽을 적에 그대의 구원이 될 수 있으며, 그대의 집이 되고, 그대의 귀의하고 도피할 곳이 될 것이오.”

부처님 말씀은 간명하다. 자신을 구원할 자는 자기 자신 뿐이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정진하라. 수행은 멀리 있지 않다.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한 일을 닦는 것’이야말로 생로병사 고해를 건너 피안으로 데려가 줄 바라밀이 될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가운데 후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격언인데, 부처님 말씀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시 영정사진을 보니 도반 스님이 간절한 눈길로 당부하고 있다. “스님, 벌써 12월이야. 죽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야. 어느 날 문득 나처럼 죽음을 마주할거야.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인 듯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고 또 정진하기를….”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65호 / 2020년 1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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