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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완전한 고요[적멸]를 묻는 바라문을 교화하다

버리되 버린다는 생각도 마라

과거현재미래 집착 않을 때
비로소 적멸 성취할 수 있어
세속 떠나 고요 추구하는 건
바른 불교수행이라 볼 수 없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명상 열풍이 불고있다. 20세기 명상이 주로 신비주의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었다면, 21세기 명상은 심리치료적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명상은 불교 수행법을 근간으로 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존 카밧진 박사의 MBSR이다. 심리적인 문제, 특히 스트레스나 우울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프로그램이다. 한편 명상수행을 한다 하면 어떤 사람들은 ‘완전한 고요’, 혹은 ‘절대적 고요’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을 추구하는 전통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불교는 이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 ‘열반이나 적멸(寂滅)과 같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숫따니빠따” 제5장 ‘피안도품’에 ‘학인 자뚜깐닌의 질문에 대한 경(Jatukaṇṇimāṇavapucchā)’에 이와 관련된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려 있다. 자뚜깐닌은 바라문 바바린(Bhāvarin)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바바린이 어떤 고행자에게 저주를 받고 이를 근심하던 차에 자신의 제자 16명을 부처님에게 보내 저주를 푸는 방법을 묻게 되는 장면에서 ‘적멸’과 관련된 대화가 나온다.

[자뚜깐닌] 욕망의 대상에 대해 욕구를 지니지 않은 영웅에 대해서 듣고, 번뇌의 물결을 초월한 분에게 묻고자 욕망 없는 분을 찾아왔습니다. 일체를 아는 눈을 지닌 분이시여, 적멸의 길을 설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있는 그대로 여실히 저에게 그것을 설해 주소서.
[붓다] 자뚜깐닌이여, 모든 욕망의 대상에 대해서 탐욕을 버리시오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아서, 그대는 어떤 것을 취하거나 버려서는 안됩니다.
과거의 것을 말려 버리고, 미래에는 그대에게 어떤 것도 없도록 하십시오. 만약 현재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적멸의 상태로 유행할 것입니다.

바라문 자뚜깐닌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적멸의 길(santipada)을 여쭙고 있다. 이에 부처님은 욕망의 대상에 대해서 탐욕을 버리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면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서 보다 구체적으로 ‘취하거나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버리는 것이 욕망을 떠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버리는 것도 또한 욕망임을 알아야 한다. 취하고, 버린다는 것은 모두 극단으로서, 하나의 입장을 고집하는 것이 된다. 취한다는 생각, 버린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온전하게 욕망의 대상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는 물론 미래에 대해서 집착하거나 기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이어진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회한[후회]으로 남게 된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헛된 망상[기대]과 두려움을 낳게 된다. 이 두 가지 모두 번뇌를 발생시켜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나 아직 현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게되면 이를 토대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한과 기대가 다시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 온전히 집착하지 않을 때 비로소 적멸을 성취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바로 이러한 가르침이 훗날 “금강경”에서 ‘과거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바라문 자뚜까닌은 ‘적멸의 길’, 즉 적멸에 이르는 방법을 물었다. 어찌보면 완전한 고요함이란 상태를 상정하고 그것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행법(行法)을 물은 것은 아닐까. 여기에 부처님은 탐욕을 버리되 버린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과거 미래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적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불교수행을 그저 세속을 떠나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 가르침은 이러한 이해가 잘못된 견해임을 밝혀주고 있다. 젊은 바라문 자뚜까닌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멸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게 됐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65호 / 2020년 1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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