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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유재욱의 ‘별리’(2008)

삶의 유사성 반복으로 생의 윤회 은유하다

결혼식 앞둔 민정, 어린 시절 집 떠난 부친 찾아 망해사 행
부모 없이 절에 사는 도운 스님 아픔 공감…유사 가족 구성
퇴우 스님 “꽃이 진다고…” 선문답으로 가족의 그리움 표현

유재욱의 ‘별리'는 회자정리를 나타낸 불교영화이다. 사진은 영화 ‘별리' 스틸컷.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것은 버스만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은 도착할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의 정차이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이고 버스를 타고 도착할 목적지에 대한 희망이다. 그곳이 단지 매일 귀가하는 집이라 할지라도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의 설렘과 희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도착한 버스는 승차한 승객에게 잔여 감정을 덜 남기지만 떠나버린 버스는 정거장에 남아있는 승객에게 아쉬움과 그 꼭대기에 놓쳐버린 상실감을 남긴다. 상실과 이별은 인간이 피하고 싶은 말이며 상황이지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 

민정은 여섯 살 때 떠난 부친을 찾아 망해사로 간다. 부친의 부재는 민정에게 평생 마음의 결핍을 남겼고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상처와 모든 이는 나를 버릴 것이라는 격리불안을 심어주었다. 민정은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부친을 찾아 나섰다. 부친은 망해사의 퇴우 스님이며 그는 민정의 유년시절 집을 떠나 절에서 생활하고 있다. 민정은 버스에서 내려 시골 아낙네에게 망해사 가는 길을 묻는다. 민정은 시골 아낙네의 짐을 들어주면서 망해사로 가는 길에 동행한다. 그리고 그 아낙네는 민정에게 망해사의 길을 대충 알려주고 떠난다. 만나고 이별한다는 법칙이 ‘별리’에서 거듭 등장하지만 첫 번째 만나고 떠나는 사례이다. 민정은 망해사로 가는 길에 젊은 퇴우 스님을 만나서 물을 한잔 건네받는다. 그리고 그는 묵언 수행을 하면서 산길로 떠나고 민정이 망해사에 당도했을 때 주지인 퇴우 스님은 도운 스님에게 냉수 한잔 가져오라고 요청한다. 이 장면에서 길에서 만난 젊은 스님이 퇴우 스님의 분신임을 암시한다. 민정은 젊은 퇴우 스님과의 만남과 길에서 헤어짐으로 두 번째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망해사에서 다시 퇴우 스님과 동자승인 도운 스님을 만난다. 민정은 망해사를 찾아온 용건이 부친의 천도제를 지내기위해서라고 둘러댄다. 민정은 부친이 산에서 실종되었으며 이 절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었다고 전하면서 퇴우 스님에게 부친의 이력을 전한다. 천도제는 보름에 지내기로 하고 민정은 절에 머물면서 두 스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산사 생활을 한다. 세 사람은 같은 상에서 가족처럼 공양을 한다. 그리고 법당에서 퇴우 스님과 도운 스님이 예불을 드리고 민정은 밖으로 나온다. 도운 스님은 벌통에서 벌꿀을 따먹고 화재가 나서 벌통이 전소된다. 이 장면은 도운 스님이 벌에 쏘여 병원 진료를 받게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다소 작위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하지만 벌통이 전소되어 자책감이 들고 벌에까지 쏘인 도운 스님이 울면서 민정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중요하다. 모친을 잃은 도운에게 민정은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퇴우 스님은 가출한 도운 스님의 부친의 자리를 대체한다. 그들은 절에서 서로 유사 가족을 구성하면서 서로의 인연과 삶을 반복한다. 도운은 병을 앓고 퇴우 스님은 도운의 마음의 병에 대해 전한다. 도운은 사고로 모친을 잃고 부친은 집을 나가서 절에 의탁하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부친의 부재를 경험한 것은 민정과 도운의 삶이 닮았다. 민정의 유년 시절은 동승 도운의 현재와 겹친다. 

법당에서 지장보살을 염불하면서 퇴우 스님은 천도제를 지낸다. 민정은 살아있는 부친의 천도제를 지내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여 염주 알을 끊어버린다. 퇴우 스님은 민정에게 3천배를 권한다. 민정은 퇴우 스님에게 사진을 건네고 “왜 우리를 버렸는지” 묻는다. 퇴우 스님은 2년 전 찾아온 도운의 부친 이야기로 자신의 심경을 대신 전한다. 절에 도운 스님의 부친이 찾아왔다. 그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여 아내를 죽이고 그 죄책감으로 전국을 떠돌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수하기 전에 아이인 도운 스님을 한 번 보고 가기 위해 절에 찾아왔다. 퇴우 스님은 도운 스님의 부친에게 “죽음이 인연의 끝이 아니며 헤어짐이 인연의 끝이 아니니 맘 편히 가시라고 했다”고 전한다. 퇴우 스님은 민정에게 “꽃이 진다고 해서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선문답으로 답한다. 꽃이 진다고 꽃을 잊을 수 없듯이 집을 떠난 퇴우 스님도 속세의 인연인 민정과 가족을 다 잊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선문답은 회상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민정이 어린 시절 대문 밖의 인기척에 민정의 모친이 대문을 바라보자 민정이 방에서 누가 왔는지 묻는다. 그 때 골목을 벗어나는 퇴우 스님이 뒷모습이 후경에 보인다. 퇴우 스님은 속세와 인연은 끊었지만 속세에 피웠던 꽃이 그리워 잠시 지나는 길에 바라본 것이다. 도운 스님은 민정을 찾지만 이미 그녀는 절을 떠났다. 도운은 어머니의 역할을 했던 민정과의 이별로 소리 내어 운다. 퇴우 스님은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난다”고 도운 스님을 타이른다.  퇴우 스님은 한편으로 우는 도운을 달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딸과 이별한 자신의 아픔도 보이지 않게 다스린다. 이 영화는 인물이 서로 동일시되는 상황을 반복한다. 인물은 인간의 인연과 유사한 행위의 반복으로 생의 윤회를 은유하고 있는 것 같다. 민정과 도운은 유년 시절에 부친과 이별하는 상황에서 유년의 삶이 서로 닮았다. 민정이 절을 떠난 다음에 퇴우 스님과 도운 스님은 다시 육친(유사 엄마이자 친 딸)과 이별로 인한 슬픔이라는 감정의 유대를 공유한다. 상황은 각자의 삶을 윤회처럼 반복한다. 결국 ‘별리’는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며, 헤어짐이 인연의 끝이 아니며, 모든 만남은 영속되지 않는다는 불교의 진리를 짧은 영화에 담아냈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65호 / 2020년 1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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