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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참회해야 할 때

겨울로 접어들자 코로나19는 튼튼하던 한국의 방역체계를 한계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에서는 9·11테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죽고 있다. 통계를 내고 있는 월드오미터 12월17일자에 따르면 전 세계 감염자는 7450만명, 사망자 165만명이라고 한다. 방역은 강화되고, 친구·친지들과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소모임마저도 물 건너갔다. 새해가 온다고 해도 무엇이 새로울 것인가. 그래도 희망은 있어 각국 정부는 전 세계 제약회사로부터 백신이 공급되면 내년 이맘때쯤, 어느 정도는 국내외 질서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서막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더 큰 바이러스가 오거나 이마저 통째로 삼켜버리는 지구적 과제인 기후위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사는 환경은 지구이며, 공존해야할 지구를 인간이 독점하고, 독재자처럼 모든 것을 처분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 욕망이다. 소유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불타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바라본 제행무상의 기본적 인식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무상함을 알고는 있지만, 불교는 이를 직관하며 객관화할 수 있는 무상관(無常觀)을 통해 자기성찰하는 힘을 부여한다. 나아가 한정된 자아를 넘어선 우주적 차원의 무아와 대아, 불생불멸의 영원성을 체득할 수 있는 수행체계를 갖추고 있다. 병든 문명을 치유하는 길은 이 무지와 무명의 자아를 해체, 중도실상의 세계로 귀환하여 생생약동하는 존재의 무한한 기쁨을 회복하는 길 외에는 없다. 그러나 올바른 환지본처를 위해 그동안의 잘못을 처절히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회의 길은 제불조사들이 수없이 펼쳐놓았다. 각종 경전에 의거한 참법은 물론 독자적인 참회의 길을 닦아 놓았던 것이다. 가르침에 따라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 불토에 상주하는 지름길들을 터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반드시 이 길을 통과해야 한다. 그 길의 기본 원리는 천태지의대사가 ‘마하지관’ 등에서 설하고 있는 이참과 사참의 가르침이 가장 명료하다. 이참(理懺)은 죄의 공성, 무자성의 원리를 깨치는 것이며, 사참(事懺)은 예배, 독경, 염불 등으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참회게도 자성의 분별심을 소멸시켜 공한 자리에 들어가는 이참과 근본번뇌인 탐진치를 불씨삼아 신구의 삼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사참을 설한다. 원효대사의 ‘대승육정참회’도 불각에 처한 중생이 본각에 직입(直入)하는 길과 시각을 통해 돌아가는 길로써 양자의 참회 구조와 같다.

인류는 지금 전면적인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 전쟁은 재래전하고는 다르다. 바이러스를 대타로 내보낸, 인간 자신의 마음과 치루는 전투다. 마음은 문명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하루아침에 파괴하기도 한다. 위기는 인간의 위기다. 이참은 이 문명의 근원과 의미를 밝혀줄 것이다. 사참은 삶의 고통을 야기하는 문명의 부작용은 무엇인가,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밝은 지혜를 드리워줄 것이다.

참회의 시작은 고통의 현실 그대로를 직시하는 일이다. 참회는 원인 제공자인 인류에게 원한을 품고 간 이웃들에게 일말의 위로가 되리라. 참회의 끝은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바이러스에 의해서든, 절망 속에서 스스로이든, 자본의 횡포에 의한 죽임이든, 아파하며 스러져가는 모든 영혼들의 슬픔을 끌어안는 일이다. 연기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그들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 된다. 우리는 이 문명과 지구가 처한 위기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숱한 이유로, 숱한 형태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 그들의 목숨이 내 목숨이다. 그들의 존재는 나의 존재이며, 그들의 부재는 나의 부재다. 암흑에 가까운 연말이지만, 불자들이라면 참회로써 이 재액을 막아야 한다. 그 근본 원인을 정화시키는 참회야말로 불법의 최고 가치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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