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과 겨울 3개월씩 선원에 들어가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이 있다. 그렇게 안거에 들어간 수좌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좌선을 한다. 틈틈이 밥 먹고 빨래하고 밭일을 하기도 하는 그 삶이 한 해의 절반 정도 반복된다. 전국 100여 곳 선원에서 살아가는 2000여 일반 수행자들의 모습이다.
도림법전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한 원제 스님도 그 일반 수행자 중 한 명이다. 제방 선원에서 20여 안거를 지내면서도 절 밖에 나가는 걸 별로 내켜하지 않던 젊은 수좌 원제 스님이 2012년 9월 산문을 나섰다. 그리고 2년여 동안 5대륙 45개국을 다니는 세계 일주를 감행(?)했다.
커다란 배낭에 침낭과 모기장, 가사와 승복, 카메라와 노트북을 넣고, 절 밖에서도 매일 108참회문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108참회문과 성철 스님이 쓴 ‘불기자심(不欺自心)’ 명함판도 챙겼다. 수행이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걷는 듯한 답답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옛적 중국 무림인들이 강호 첫 진출 때 비장한 마음을 갖듯,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해야겠다는 결의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막힌 벽을 뚫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곧게 받아들일 그릇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다짐이 컸다.
그렇게 산문 밖을 나선 스님이 2년여의 세계 일주 기록을 ‘다만 나로 살 뿐’에 담아냈다. 눈앞의 허공을 도량삼아 살아가는 수행자가 수행자 시선으로 바라보고 옮긴 특별한 수행기이자,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저에게 진정한 혁명이란 바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이 모두 자연스럽게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일이 이미 벌어진 뒤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세계 일주를 하며 저는 저 자신과 시선이 바뀌는 조용한 수행 혁명을 부단히 해가고 있었습니다. 세계 일주 역시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수행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눈앞의 삶으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 일주가 수행 혁명의 과정이 된 스님의 만행은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중국, 네팔, 인도를 거쳐 유럽, 남미, 미국으로 이어졌다. 그 여행의 길목에서 선 수행을 하는 중국인, 출가를 준비하는 인도인,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관음선종센터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인을 만났다. 불교와 명상, 선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라도 미리 챙겨간 한국불교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함께 보며 한국의 선 수행 문화를 설명하고 안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수행농장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외국인들을 위한 법문을 펼치고, 영국의 한 교회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예배를 보기도 했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고, 우리 삶은 변화와 흐름의 연속이라는 삶의 신조는 여행길에서 그렇게 실천됐다.
스님은 “세계 일주를 하며 꼭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든 안 좋든 그 수많은 상황을 접하며 낱낱의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움으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경험을 치러냄이 모두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저는 세계 일주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자평하고 있다. 세계 일주가 곧 수행이 된 셈이다.
여행을 마치고 수년이 지나서 다시 작성한 여행의 기록들은 스님에게 있어서 만다라를 완성하는 듯한 작업이었다. 흐르는 강물에 한 줌 모래를 흩뿌리는 심경으로 이 책을 통해 세계 일주 여정을 마무리 하면서 “세계일주가 도대체 자신의 삶과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무슨 의미로 잡혀가고 있는지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라고 밝힌 스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형화된 틀과 남들의 시각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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