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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견해에 집착하는 바라문을 교화하다

지혜로운 이는 있는 그대로 성찰

집착 없이 보고 알아차릴 때
내면의 적멸을 경험하게 돼
‘이다·아니다’ 결정된 견해는
행위나 학식에 집착한 결과

인간이 문명사회를 건설하게 된 것은 ‘지식을 추구’하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이 문명을 건설하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초월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전자가 물질문명을 발달시켰다면 후자는 정신문명을 발달시킨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은 이 두 가지 범주 안에 갇혀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이 안에 있을 때 편안함과 자기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지식을 추구하는 특징은 모든 것을 이론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일종의 강박과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자아관념’이다. 그렇기에 저 사람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고, 나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와 같은 관념적 구별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렇기에 관념적 구별을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이와 관련한 경전이 있다. ‘숫따니빠따’ 제4장에 있는 ‘마간디야에 대한 설법의 경(Māgandiyasutta)’이다.

[마간디야] 당신은 어떤 견해, 계율, 습관, 생활과 어떠한 존재로의 재생을 주장합니까?
[붓다] 마간디야여, ‘이와 같이 나는 말한다’라고 진술할 뿐, 그러한 나에게 가르침에 대한 집착은 없습니다. 관찰하면서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성찰하면서 나는 내면의 적멸을 본 것입니다.
[마간디야] 성자시여, 사변적 이론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내면의 적멸을 강조하시고 그 의미를 설하는데, 어떻게 현자들이 그것을 설합니까?
[붓다] 마간디야여, 견해나 배움에 의한, 또는 규범과 금계에 의한 청정을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마간디야여, 견해가 없고 배움이 없고 규범과 금계가 없는 청정도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 없이, 고요하여 존재를 갈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간디야] 견해나 배움에 의한, 또는 규범과 금계에 의한 청정을 말씀하지 않고, 그것들이 없는 청정도 말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미하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는 것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는 것이 곧 고요함이라고 말씀하지만, 마간디야는 견해나 배움, 혹은 도덕적 규범 등을 통해 청정을 말할 수 있는데,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 마간디야는 어떤 확실한 선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다’ 혹은 ‘아니다’와 같은 결정된 가르침이 있어야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가 ‘저 나무를 베어버릴까요?’라고 물었는데, ‘낙엽이 지면 지저분하긴 하지. 그러나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지’라고 답하면, 질문자는 ‘뭔 소리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베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확답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불만을 표하게 된다. 그 말하는 바를 바로 보지 않기에 마간디야가 말한 바와 같이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붓다] 마간디야여, 견해에 집착하여 자꾸 물어보는데, 집착하여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그대는 내가 말한 것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중략) 지혜를 성취한 사람은 견해나 사변으로 판단하지 않으니 그러한 본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위나 학식에 영향 받지 않고 견해의 집착에도 이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기대하는 확답을 얻지 못하면 마간디야와 같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는 모두 견해와 주장, 배움, 도덕적 규범 등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익숙해진 결과이다. 그 익숙함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성찰하게 될 때, 견해나 사변에서 벗어나 참된 적멸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견해의 그물에 빠진 마간디야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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