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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47칙 용숙봉소(龍宿鳳巢)

“오늘 먹는 나물은 어떤 것인가”

탁마에는 자리이타 따로 없어
위산의 질문에 공양주 협산은
“작년 봄과 다르지 않다” 답해

협산이 위산 문하에서 전좌로 있을 때 위산이 물었다. “오늘 먹는 나물은 어떤 것인가.” 협산이 말했다. “작년 봄과 올해 봄은 똑같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수행하기에 딱 좋겠구나.” 협산이 말했다. “용이 봉황 둥지에서 잠을 자는 꼴입니다.”

본 문답은 일상의 생활에서 선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선문답은 어떤 수행을 하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질문하여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상징적인 제스처를 통하여 전개된다. 전좌(典座)는 육지사(六知事) 가운데 하나로서 선원에서 대중의 공양을 담당하는 직무이다. 선회가 공양간을 담당하고 있었던 까닭에 위산이 오늘 저녁에 공양거리로 준비한 나물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실인 위산이 굳이 공양간을 방문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러나 위산은 모든 제자를 보살펴주는 자상한 선승이었기 때문에 어디에 있는 납자든지 자유롭게 찾아가서 만나 수행상태를 점검해주고 그에 알맞은 지도법을 일러주고 있다. 아직 공양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위산은 협산의 수행이 궁금했다.

위산이 공양간을 선택한 것은 명맥하다. 모든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공양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 공양하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오늘 저녁에 먹을 것으로 준비해둔 나물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이 말은 바로 공양을 준비하는 경우에 나물을 엄선하여 잘 씻으라는 뜻으로서 약간의 번뇌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위산의 그 말에 대하여 협산은 작년의 봄철과 올해의 봄철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여일하게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피력한 것이다. 곧 작년이나 올해나 변함없이 똑같은 봄처럼 지내고 있다는 말이다. 산속에서 봄에는 나물이 지천에 깔려 있다. 나물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서 모든 대중이 부족하지 않게 먹을 만큼 장만해두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충분히 수행에 힘쓰고 있다는 협산 자신의 심경을 보여준 것이다. 위산에 도착해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해찰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매일 대중을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 공양주의 업무처럼 매일의 과업으로 게을리 할 수 없는 수행의 지속적인 속성을 의미한다. 때문에 그와 같은 자세로 덤비는 납자야말로 수행을 지속하기 딱 좋은 모습이라고 찬탄을 해준다.

그러나 협산은 끝내 위산의 그와 같은 칭찬의 말에도 긍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산의 말이 칭찬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수행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협산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수행해온 마당에 굳이 칭찬을 받을 특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산에게 그와 같은 말씀은 너무나 생뚱맞는 말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마치 물속에 살아야 하는 용이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봉황의 둥지 속에 들어가 잠을 자는 꼴이라고 답변한다. 참으로 당돌한 답변이다.

위산은 협산의 답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까닭에 더 이상 코멘트를 붙이지 않고 돌아서서 공양간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일찍 도착한 공양간에서 곰곰이 생각한다. 협산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어떤 업무를 맡겨야 하는지, 얼마나 붙잡아두고 가르쳐야 하는지, 그런 연후에는 누구에게 보내서 더욱더 선기를 개발하도록 할 것인지 등. 진정으로 남을 이해하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이해하는 자는 명석하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깨치고 그런 연후에 남을 깨우쳐주는 것은 자리이타의 보살행을 실천하는 모습이겠지만 이미 서로 만나서 탁마하는 경우에는 자리와 이타가 따로 없다. 함께 자리하고 함께 이타하며 함께 격려하면서 서로 자신과 타인을 점검해 간다. 그것이 설령 스승과 제자의 경우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스승이 제자를 가르쳐주고 제자가 스승을 가르쳐준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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