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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고지마 미유의 ‘시간이 멈춘 방’

기자명 박사
  • 박사의 서재
  • 입력 2020.12.28 13:43
  • 수정 2020.12.28 13:45
  • 호수 1567
  • 댓글 0

우리 사는 지금 이곳의 부정관수행

고독사 현장에 남겨진 풍경들
남 일 아닌 나의 현실로 인지
죽음은 삶의 대척점이 아니며
우리의 삶은 죽음과 하나인 몸

‘시간이 멈춘 방’

할아버지는 입을 벌리고 고요하게 누워계셨다. 중학생이던 나는 방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돌아섰다. 중풍으로 자리보전한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것을 본 시간은 십년이 훌쩍 넘었다. 늘 보던 풍경에서 한 치도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곳에는 있던 게 없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경한 감각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아버지도 집에서 돌아가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아버지는 숨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미 건너가셨다고 했다.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라고들 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서 돌아가신다. 병원이 아니라면 이후 절차가 무척 복잡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절차도 부산스러웠다. 죽음은 깔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되었고, 많은 전문 인력이 그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 시대의 죽음이란 무엇일까. 내 죽음을 상상하기는 너무 쉬워졌고, 너무 어려워졌다.

부처님이 제안하셨던 “부정관 수행”은 지금 시대에 적절하지 않다. 방법이 없다.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 신체의 더러움을 끈기 있게 관찰하며 몸에 대한 애착과 욕망을 끊는 이 수행법은 당시에도 수행자가 허무에 빠져 자살하는 등의 폐해가 있었지만, 그만큼 효과가 강력했다. 지금의 시신은 재빠르게 격리되어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듯 일률적으로 커튼 너머로 사라진다. 이 세계에 남아있는 것은 집착과 욕망이 덩어리를 이룬 몸이다. 본질을 잊은 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외로운 방에서는 고요히 시체가 썩어간다. 이 책의 저자인 고지마 미유의 직업은 특수 청소와 유품 정리다. 고독사하거나 자살한 이들이 있던 장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흔적을 지우는 일.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온기 대신 오물과 악취가 자리하고 모든 이가 외면하고픈 고립의 공간”인 장소를 그는 미니어처로 만들었다.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발견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시체는 차분하게 썩어 이불로, 바닥으로 스며든다. 그가 만든 미니어처에 시신은 없지만 시신의 검붉은 흔적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는 시체가 썩어가는 풍경을 신문에 모자이크 된 납작한 사실에서 바로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로 가지고 온다. 그는 죽음 이후의 풍경을 “남 일이 아닌 나의 현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첫 미니어처를 만들어 전시한 것은 2016년 장례업계 전문전시회 ‘엔딩산업전’에서였다.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첫 미니어처 이후, 그는 여덟 점을 더 만들었다. 구체적인 한 장소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고독사 현장에서 목격하는 방의 특징을 모아놓은 작품들이다.

어떤 곳은 우리의 상상과 비슷하고, 어떤 곳은 생경하다. 마권, 도박티켓, 신문이 어지러이 널려있고 온갖 술병들, 빈 편의점 도시락통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가운데 겨우 자리한 이부자리. 그 이부자리 위에 웅크린 자세로 남아있는 부패한 흔적은 죽음 이전 그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정교하게 재현해 낸 쓰레기로 가득 찬 쓰레기집은 그곳에 살던 이가 생명 이전에 무엇을 놓아버렸는지 생각하게 한다. 변기 위, 욕조 안을 검게 채운 체액은 비명횡사한 이의 마지막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주인이 죽은 한참 뒤에 발견된 앙상한 반려동물의 눈동자. 고급주택의 식탁에 앉은 채 절명한 이의 흔적이 보여주는 외로움. 죽음이 있는 풍경은 말이 없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죽음이 사실은 삶의 대척점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삶은 죽음과 한 몸이라는 것, 우리의 몸은 생성과 소멸의 한가운데를 관통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잊기 쉬운 진실이다. 죽음과 삶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그러한 망각을 부추긴다. 그러니, 가끔은 멈추어서 지금 어디선가 고요하게 썩어가고 있을 시신을 생각하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부정관수행이자 자비행이리라.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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