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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지상의 ‘십우도2 : 견적소의 자취를 보다’(2005) (끝)

기자명 법보

귀농생활서 찾은 마음의 실체와 자기 완성

감독은 실제 귀농해 농사지으며 십우도 시리즈 4편 제작
노동 통한 수행에서 나비는 변화하는 마음 움직임 가시화
현장·순녀·귀농한 감독은 각자 영화서 나침판과 등불 찾아

영화 ‘십우도2 : 견적'은 수행·고행 통해 깨달음 지향하는 불교영화다. 사진은 영화 ‘십우도2 : 견적' 스틸컷.

구순의 노모는 거의 매일 아침 예불을 드리신다.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모친의 거의 유일한 여행은 부처님오신날에 장흥의 보림사로 예불 모시러 가시는 일이었다. 모친 일행과 당도한 보림사 방문이 산사와 맺은 최초의 인연이었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범어사와 통도사의 순례는 극장가는 일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산사 순례는 경서의 반 권을 통독하는 일에 버금갈 정도로 마음을 씻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번 휴일에도 양산 통도사를 순례하였다. 겨울의 통도사는 가지런히 도열한 소나무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통도사 초입에 도열한 소나무들은 영축산 곳곳에서 계절을 기다리고 극락암을 병풍처럼 에워싸면서 지나가는 바람을 만난다. 소나무의 기다림은 바람과 계절만이 아닐 것이다. 산사 순례자들은 각자의 염원을 마음에 담아 절을 찾고 불상 앞에 참배한다. 그 기다림의 마음이 소나무의 줄기와 잎에 말없이 맺혀서 통도사 소나무 숲을 이루었다. 소나무의 기다림은 인간의 기다림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을까. 이지상의 ‘십우도2 : 견적’은 기다림에 대한 영화이면서 그 마음을 대사 대신 이미지로 프레임에 담았다. 마음은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이며 통도사 다리 이름도 삼성반월교, 세심교 등 마음을 나타내고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새겼다.

이지상 감독은 2003년 문경으로 귀농하여 실제 농사를 지으면서 십우도 시리즈 4편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두 번째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서간문 형식의 자막으로 채워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염원에서 ‘살아있는 것은 늘 헤어지는 것’이라는 소소한 깨달음의 흔적과 ‘길 잃은 상태이며 외롭다’는 말까지 토로한다. 급기야는 직접 출연하고 목소리로 연기하는 이지상 감독은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심정을 토로하고 “아픈 마음을 내 보아라”라는 선문답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이 선문답은 달마조사와 혜가대사의 일화를 토대로 현재 감독의 마음을 표현한다. 달마조사와 혜가의 선문답은 “저의 마음이 편하지 못하니 스님께서는 편안하게 해주십시오”라는 혜가대사의 애원에 달마대사는 “그 편안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대를 편안하게 해주겠노라”라고 권면한다. 혜가대사는 “마음을 찾아도 마침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달마조사는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느니라”(무비 스님 ‘직지강설’)라고 일깨워준다.

‘십우도’에서 귀농해 혼자 생활하면서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감독의 마음은 친구가 아파서 문경에 오지 않거나 길 잃은 상태로 지내는 현재의 삶이 야기하는 고통에 가깝다. 여기서 십우도는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외로움과 내면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기운다. 주인공의 첫 장면인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텅 빈 여백은 그가 지니는 그리움의 영역이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버스는 도착하지만 기다리는 이는 내리지 않고 지나간다. 다음 장면에서 마음이 아프다는 자막이 곧장 등장한다. 그의 마음은 허공과 같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구체적인 마음에 가깝다. 여기서 십우도는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외로움과 내면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기운다.

주인공은 홍시를 먹고 오이를 먹으며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고 대추를 줍고 재배한 벼를 벤다. 그의 일상은 노동으로 채워졌으며 노동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이기도 하지만 자막과 노동의 행위가 동시에 교차되면서 일종의 수행에 가까워진다. 고정 화면으로 차분하게 관찰하던 카메라는 불쑥 두 마리 나비가 날아올 때 핸드 헬드로 바뀌면서 움직임이 극대화된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나비를 포착하기 위한 물리적 움직임이기도 하지만 그리운 이의 환생인 나비의 등장으로 인한 마음의 격동에 리듬을 맞추고 있다. 정과 동의 이분법은 노동의 모습으로 포착한 수행의 이미지에서 나비의 등장으로 변화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가시화된다. 마음을 프레임에 담고 결국 자막으로 담아내어 주인공의 마음, 관객의 마음의 자취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불교적 질문을 던진다. 대추 따는 남자에서 흰 천으로 전환되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이전의 작품에서도 검은색 천으로 컷이 전환되면서 마무리된 것과 서로 호응한다.

‘십우도2 : 견적’은 귀농 생활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헤어져 지내는 것을 선문답으로 마음의 실체는 어디서 연유하는지 반문한다. 불교영화는 자신을 찾는 십우도 계열의 영화에서 참나와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고 수행과 고행을 통해 자기완성과 깨달음을 지향하는 영화는 길을 떠나거나 해탈에 당도한다. 통도사의 반야용선도는 피안으로 향하는 중생들이 배를 타고 항해하는 모습을 담았다. 반야의 의미는 이번 통도사 순례에서 크게 다가왔다. 반야는 밝다, 지혜의 의미인 프라즈나를 뜻한다. 배에 승선한 중생들이 반야라는 지혜를 통해 이승에서 피안으로 건너고 있다. 100부로 구성된 서유기의 마지막은 ‘마하반야바라밀’로 맺는다. 현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은 결국 큰 지혜를 통해 마음의 평화라는 열반,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 성불한다.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성년승이 멧돌을 묶고, 불상을 들고 산 정산으로 오른다. 그리고 그 정상에서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사찰과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종료된다. 현장은 불경을 구하러 가는 여정을 통해,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순녀는 속세의 고해를 통해, ‘십우도2 견적’은 귀농 생활을 통해 결국 고해를 건너고 있다. 현장과 순녀와 귀농한 감독은 모두 반야용선도를 타고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각자의 나침판과 등불(반야)을 찾고 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승선한 반야 용선도가 순항하여 아름다운 목적지에 당도하길 기원한다.

그동안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법보신문과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비 스님의 ‘직지강설’ ‘반야심경’ ‘금강경 강의’, 월호 스님의 ‘영화로 떠나는 불교여행’을 통해서 불교에 관한 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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