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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종교 불교, 정체성 회복해야 길 열린다

  • 새해특집
  • 입력 2020.12.31 20:16
  • 수정 2020.12.31 20:35
  • 호수 1568
  • 댓글 1

부처님은 불평등·차별 넘어선 승가 통해 평등공동체 실현
현대에는 출재가·남녀·문중 차별 잔존…불교 위상 걸림돌
평등 실현될 때 불교도 건강…논의구조·제도 정립이 관건

지난해 불교계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차별금지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발의되면서 큰 산 하나를 넘겼다. 하지만 2021년에도 여전히 ‘차별’은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자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평등은 참지 못한다’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사회는 차별과 불평등에 민감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으며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촉발된 급변과 불확실성의 확산은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더욱 민감한 역린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모든 불평등과 차별이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오늘날, 당대 최고의 평등사상을 설했던 불교의 현주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2600여년 전 석가모니부처님의 승가는 ‘슈라마나(śramana, 沙門)’라고 불렸던 ‘새로운 사상가’ 세력의 주축이었다. 이후 ‘슈라마나’가 ‘사문’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될 만큼 승가는 개혁의 대명사였다. 이러한 모습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왕족이었던 샤카족의 출가에 앞서 그들의 이발사였던 천민 우팔리를 제자로 받아들여 샤카족의 사형으로 삼았던 사례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천민의 출가, 그것은 ‘천민이 베다를 보면 눈을 뽑고, 들으면 귀에 쇳물을 붓고, 읽으면 혀를 뽑는다’는 관습법이 통용될 정도로 철저했던 계급사회 인도에 있어서, 쿠데타나 다를 바 없는 혁명적 행보였다. 이에 대해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은 “선천적 계급 차별을 지양한 붓다의 평등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단면”이라며 “붓다는 선천적 조건이 아닌 후천적 행위와 노력에 의한 차이만을 강조하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후천적 행위와 노력보다 선천적 조건에 따른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출가 지상주의 지양’을 선언하며 2000여년 전 불교가 일으켰던 대승불교의 정신은 오늘날 재가자를 ‘속인’이라 부르는 흔한 표현 속에서 이미 퇴색되었음을 보여준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승단의 존립이 재가자의 보시에 기반하지 않고, 재가자의 신행 또한 승단의 청정함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교단의 평등한 구성체였던 사부대중의 구조는 어느 때부터인가 출가와 재가라는 계급적 상하구조를 양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는 승단 안에도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비구와 비구니는 2600년 전 인도사회의 시대적 한계를 반영했던 계율에 근거해 여전히 상하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여기에 문중과 문도라는 또 하나의 계급을 양산하며 교단 내에 새로운 계급 관계를 고착화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평등사상을 추구했던 불교가 오늘날 불평등이 만연한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지경이다. 하지만 교단에 몸 담고 있는 사부대중조차 이러한 지적에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불교의 단면이다. 매년 가파르게 줄고 있는 불자인구와 ‘급감’을 넘어 ‘추락’이라는 표현을 불러올 정도로 위태로운 출가자 감소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교계 안팎에서 높다. 교단 내에 고착화 된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하고 교단 밖에서 제기되는 지적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불교의 미래 또한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에 이제는 귀 기울일 때다. 

“나는 깊이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감히 가볍게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다 보살도를 실행해 성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전생에 대성(大成)이라는 나라에 상불경(常不輕)비구로 계실 때 만나는 모든 이에게 한결같이 설한 말씀이다.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에서 전하는 가르침처럼 계급, 성별, 종교, 빈부 등 모든 차별을 떠난 경지에서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평등의 가치는 불교가 이 땅에 출연할 수 있었던 선연의 뿌리이자 이제 불교가 2021년을 넘어 미래의 종교로 이어질 수 있는 희망의 출발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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