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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질·상대·본질 기반한 평등 개념 중도적으로 활용해 행복의 길 구현

기자명 자현 스님
  • 새해특집
  • 입력 2020.12.31 20:19
  • 수정 2020.12.31 20:26
  • 호수 1568
  • 댓글 5

1. 부처님이 설한 평등의 본질은 무엇인가

붓다가 제시한 ‘차난’의 계율 속엔
획일적 평등에 내재된 한계에 대한
붓다의 혜안과 현실적 해결책 반영

후천적 행위·노력의 차이만 강조한
평등 선언으로 계급사회에 도전
성별·장애·성소수자 다름도 인정
깨달음 본질엔 동물에도 차별 없어

우리나라 남성에게는 국방의 의무라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군가산점제도가 시행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군복무는 대체로 남성에게만 해당하므로, 자칫 성차별의 문제를 수반할 수 있어 결국 폐지됐다. 이 과정서 여성이 제기한 주장 중, 여성만의 특수성인 출산이 대두되기도 했다.

평등은 언뜻 단순한 하나의 잣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복무와 출산의 문제처럼, 그것은 때에 따라 성에 의한 특수성이 작용할 수 있다. 또 육상이나 수영, 농구에서는 우월한 신체조건이 노력보다 경기력을 압도하기도 한다. 즉 평등은 단순이 아닌, 복합 조건 속에서 논의돼야 할 가치인 것이다.

일본 다이호온지(大報恩寺)의 우바리 존자상.
일본 다이호온지(大報恩寺)의 우바리 존자상.

붓다는 평등에 내포된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초기 불교에는 ①균질적 평등 ②상대적 평등 ③본질적 평등의 세 가지 양상이 모두 나타나며, 붓다는 이를 매우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①균질적 평등은 선천적인 계급 차별을 지양한 붓다의 평등 인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붓다는 선천적 조건이 아닌 후천적인 행위와 노력에 의한 차이만을 강조하신 분이다.

당시 인도는 머리를 묶는 상투의 방식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곤 했다. 이 문제를 붓다는 삭발을 통해 균질화시킨다. 대신 출가한 순서에 따라, 승려의 법랍에 차등을 부여해서 세속적 기준을 넘어서는 균질적 평등을 실현한다.

‘율장’의 ‘대품’에는 석가 귀족들이 출가할 때, 그들의 이발사였던 우바리를 먼저 출가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직후에 출가한 석가족의 라자(군주) 바드리카(발제)는 선배인 우바리의 발에 예를 표한다. 세속을 넘어선 균질적 평등과 불교의 차등 가치가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②상대적 평등은 조건의 차이를 고려한 평등이다. 붓다 당시 인도 여성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때문에 ‘율장’의 바라이 음계(淫戒) 조항에는, 남성 없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호구(戶口)는 가산을 몰수 당하는 양상이 기록되어 있다. ‘마누법전’에도 남성을 죽이면 살인죄지만, 여성을 죽인 것은 상해죄로 처벌되는 규정이 존재한다.

붓다는 당시의 사회 인식에서 여성 출가자를 보호하기 위해, 비구니승단은 비구승단에 부속되도록 조치했다. 이는 현대의 성평등 입장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종속구조로 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 즉 상대적인 평등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사분율’을 기준으로 비구는 250계를 수지하는 반면, 비구니는 348계를 지녀야 하는 계율의 차등이다. 이는 언 듯 차별로 보이지만, 여성의 생리와 관련된 생리대인 월수의(月水衣)의 착용이나 이의 보관 방법. 또 여성의 가슴 노출과 관련된 윗 속옷인 부견의(覆肩衣)의 사용 규정 등은 단순한 차등으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우측 어깨를 노출하는 방식의 가사에는 오른 가슴이 노출되는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계율의 항목 차등은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등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즉 차등이 곧 진정한 평등이 되는 상대적 평등의 가치인 셈이다.

상대적 평등의 가치는 출가하려는 사람의 승인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차난(遮難)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차난에는 채무가 있는 사람이나 노예 또는 관리 등의 출가를 막는다는 조항이 있다. 이는 이들이 출가할 경우, 불교 승단이 채권자나 노예주와 충돌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관리가 사임하거나 왕의 승인을 받지 않고 출가하면, 불교가 국가와 마찰을 빚을 우려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만 출가하도록 차난을 규정한 것이다.

만일 차난을 어기고 거짓으로 출가할 경우에는, 원인무효의 원칙에 입각해서 그 사람의 계체(戒體)가 사라지며 출가 자체가 무효화된다. 마치 사기 결혼은 적발 시에, 결혼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는 누군가의 출가를 막는 불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의 요소를 제거하는 진정한 평등의 가치 구현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차난 중에는 성소수자나 장애인을 금지하는 조항도 있어 주목된다. 이는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이 역시 차별이 아니라, 이들을 수용할 별도의 대안이나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제시된 금지일 뿐이다. 마치 군대에 성소수자나 장애인이 복무하지 못하고, 면제 처분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승단은 남성 집단인 비구와 여성 집단인 비구니승단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면, 서로가 힘든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성소수자를 위한 특별 승단을 만드는 것인데, 2600여년 전 고대에 이것이 사회적인 동의를 얻거나 실현 가능할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당시로서는 성소수자를 명확하게 규정할 기준이나 의학적인 측면도 없었다. 이런 점에서 성소수자의 출가를 제한한 것은, 주어진 조건의 개변이 불가능한 상황에 따른 상대적 평등이라고 하겠다. 즉 차단이 서로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었던 셈이다.

장애인 출가 금지 역시 마찬가지다. 군대가 장애인 군복무를 막는 것은 인간적인 차별이 아니라, 장애인을 수용할 수 없는 조건에 따른 판단이다. 즉 장애인이 군복무를 할 경우,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장애인의 군면제는 차별이나 우대가 아닌 상대적인 평등일 뿐이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출가를 막는 장애인에 대한 차난도 존재한다고 하겠다. 즉 이는 본질적 차이에 의한 차별이 아닌, 조건의 평등을 위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는 여성과 장애인의 깨달음을 인정하며,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동물과도 본질적인 평등을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상대적 평등은 무조건적인 평등을 넘어선, 불평등조차 완성 될 수 있는 진정한 평등의 가치라고 하겠다.

마지막은 인간의 성이나 종을 넘어서는 ③본질적인 평등 구조다. 붓다는 바이샬리에서 양모이자 이모인 대애도가 석가족 여성들과 함께 출가를 간청하자, 당시 여성에게 내포된 사회적인 인식과 문제 여론을 의식해 이를 거부한다. 그러나 아난이 ‘여성도 깨달을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자, 붓다는 ‘그렇다’고 답하며 결국 여성의 출가는 승인된다. 즉 인간의 본질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은 완전히 동등하며, 그것은 깨달음과 관련해서도 평등한 가치라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행복과 관련된 주관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우열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붓다가 세계종교 최초로 여성의 출가를 용인하고 여성의 성직을 인정한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 등과 대비되는 불교의 객관적인 우월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 논점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평등의 인식은 현대적인 관점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평등 인식은 붓다의 탁견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도의 특징적인 문화구조인 윤회론이 존재한다. 윤회 과정에서 성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본질적 차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윤회론은 인간을 넘어 동물과 인간의 본질적 평등 인식도 가능하게 한다. 윤회의 범주에 동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신화에는 반려동물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신과 동물의 연결구조가 존재한다. 브라흐만은 ‘밤사’라는 백조를 타고, 비쉬누는 금시조를 타며, 시바는 ‘난디’라는 흰소를 탄다는 전승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동물이 복속이 아닌, 상호 계약을 통해 양자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계약이란 상호 대등 관계일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인도 신화구조 속에는 신과 반려동물이 상호 계약을 통해 함께 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에도 영향을 미쳐, 보살과 반려동물의 관계가 초래되도록 한다. 문수보살의 푸른 사자나 보현보살의 여섯 상아의 흰 코끼리,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해상용왕과 같은 구조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동아시아 반려동물 문화의 시원은 불교의 물결이었다고 하겠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윤회론은 여성과 남성,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평등을 담보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 없는 완전한 평등이 내재하게 된다. 이는 대승불교에서 모두가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다는 보살사상과, 중국불교의 불성론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 가치일 뿐 그대로가 현상일 수는 없다. 마치 인간인 것은 같지만 우리와 불보살님이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현상의 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바로 앞서 언급한 ①균질적 평등과 ②상대적 평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는 이러한 세 가지 평등 개념을 중도적으로 활용해,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진정한 행복과 깨달음의 불교를 구현하신 것이다.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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