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사상, 이분법적 젠더 관념 탈피하는 철학적 기반
불교 공사상, 이분법적 젠더 관념 탈피하는 철학적 기반
  • 조승미
  • 승인 2020.12.31 20:30
  • 호수 15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여성은 평등한가

‘표현의 자유’ 명목으로 성소수자 혐오하면 해외에선 범죄 행위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편견은 ‘여성 차별’과도 깊이 연관돼 있어
유연한 젠더 문화, 새로운 공동체 형성 위한 욕구로 빠르게 진화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드러난다고 했던가. 근래 우리 사회의 젠더문제는 짙은 신음소리를 내며 병들어 가는 것 같다. 일상 공간 깊숙이 그리고 친밀한 인간관계 속에서까지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과 증오범죄가 만연해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현재 한국 젊은 여성들의 자살율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보고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가늠해 보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속에서도 새로운 젠더문화가 기존의 틀을 발랄하게 깨뜨리면서, 몸과 자아에 대해 보다 긍정적 인식의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이 변화는 젠더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를 조금 내려놓으면 오히려 불교의 공사상과도 연결되는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된다. 새로운 젠더 문화의 특성을 살펴보면서, 불교가 이 변화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함께 갈 것인지 모색하는데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마하파자파디의 출가를 허락하는 부처님.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라호르국립박물관 소장.
마하파자파디의 출가를 허락하는 부처님.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라호르국립박물관 소장.

우선, 성평등을 위한 세상의 변화가 어디까지 와있는지 검토해 보기로 하자. 한국사회는 그동안 많은 민주적인 변화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에 있어서는 많은 장애요소가 있어 그 변화가 매우 더디고 최근에는 오히려 퇴보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젠더문화를 그려보는데 있어서 우리사회의 현실은 상상력의 빈곤을 야기시키곤 한다.

우리는 대체로 ‘양성평등’과 ‘성평등’의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데, 여러 나라들에서는 이미 남성, 여성 두 개의 성별만이 존재한다는 편견이 깨어져 공식문서에 제3의 성 표기가 허용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해소를 위해서이다. 독일이 가장 먼저 앞장서서 바꾸었으며, 캐나다,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실행하고 있다 한다. 따라서 다양한 성별을 포용하기 위해 성평등이라는 용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의미를 알고 한국 보수개신교 단체들은 이 용어를 반대한다. 이들은 나아가 동성애 금지를 선거공약 홍보물에 자랑스럽게 개진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제약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행동이 범죄가 된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은 혐오로 인한 공공의 질서 파괴를 더 중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동성애 금지를 설교한 목사를 징계처분한 사례가 있으며, 동성애 금지를 피켓시위한 사람과 군중 사이에 폭행이 일어나면 그 시위자가 체포된다 한다. 캐나다에서도 공립학교에서 동성애 금지 성경구절을 배포한 사람을 혐오죄로 처벌했다. 당연시 해온 혐오표현에 우리가 얼마나 둔감한지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또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방해하는 폭력으로 작용될 경우 엄격히 제한될 수도 있음을 이들 나라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도 성적 성향과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법이 연방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이 여성의 권리와 종교의 자유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미 기독교 계열에서 반대하고 있는데, 그 양상이 한국과 유사하다.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오래전부터 발의되었지만, 보수 개신교단체의 조직된 반대운동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종교차별 예외라는 조항으로 타협하고자 하여 오히려 종교차별이 심화될 가능성 또한 제기되었다. 우리사회의 인권과 평등을 후퇴시키는 혐오세력이 누구인가 명료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이에 대한 비판은 다른 곳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여기서는 성소수자와 여성의 권리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 보기로 하자.

성소수자의 차별이 금지되면 화장실과 탈의실 등을 여성과 함께 사용하게 되어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어 여성의 안전을 보호할 수 없게 된다는 식의 비판은 거론조차 무의미한 무지와 왜곡된 시각의 산물이다. 과거에 남성의 보호를 받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왜 필요한가를 질문했던 사고방식을 생각해 보면, 지극히 남성중심의 권력관계에서 이 문제들이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간주하여 정상의 범주에서 분리시키고자 하는데 성폭력이 오히려 대부분 이성애자에게서 일어나는 사실과도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편견이 여성을 차별하는 시각과 관련되어 있음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따라서 성소수자 인권이 없이 성평등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식하여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유명인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사례 뿐 아니라,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등에서 동성애자 총리가 선출되기도 하여, 성소수자가 혐오를 넘어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수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성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는 경제와 정치에서도 여성의 참여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프랑스의 경우, 파리시 고위 공무원들의 성별 비중이 여성이 더 높게 나타나서 논란이 될 정도이며, 핀란드에서도 총리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주요인사 다수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사한 한국의 성별격차 중 가장 심한 분야가 성별급여차이(34.6%)와 조직 내 관리자 직급 여성의 비율(2.1%)이었다. 우리사회가 고등교육에 있어서 성별격차는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얼마나 성차별이 심한지 새삼 확인된다. 낮은 급여와 조직 내 주요 의사결정 지위에서 배제된 채로 기혼여성들은 가사와 양육을 거의 전담하는 실정이다. 2019년도 세계 성평등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가사와 양육을 분담하는 일이 남성답지 못하다는 인식이 우리가 세계 1위라고 하니, 이 강고한 성역할 고정관념이 한국사회 젠더문화 현실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젠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다른 나라들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 젠더 유동성(fluidity), 젠더 중립성(neutrality)과 같은 개념과 함께 새로운 문화현상이 등장하고 있는데, 성별에 입각한 관념을 탈피하고 젠더중립적인 것을 통해 인간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움직임이다. 예를 들면 유럽의 공공기관과 대학에서 성별용어를 성중립적인 것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현상이 확산되는 것이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학교에서 전통적인 남녀역할에 의도적으로 반대로 대응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한다. 성인지적 접근을 통해 젠더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인상 깊다.

가장 선도적인 젠더문화 변화는 패션, 화장품 등의 소비트렌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존 남성용, 여성용 구분이 사라지고, 오직 개인의 특성과 기호만을 위해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변화에 많은 이들이 호응하고 있다. 자본주의 기업이 소비를 자극시키기 위한 상술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는 고정된 여성성 남성성에 대한 거부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가 새롭게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스스로의 자아를 여성, 남성, 혹은 그 중간으로 끊임없이 다르게 인식하는 접근방식은 매우 새롭다. 기존의 젠더관념에 기반한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것 또한 이 트렌드에 강하게 반영되어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성별의 자유로운 변화는 뮤지컬, 연극 같은 공연에서도 시도되고 있는데, 기존 남성역할에 여성배우가 캐스팅되거나 하나의 배역을 남녀 배우가 교대로 맡기도 한다. 또 남성일색이었던 것을 의도적으로 여성캐릭터로 바꾸어 각색하는 성별전환도 시도되었다. 이처럼 유연하고 다양하며 파격적인 젠더문화는 기존의 낡은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불교는 이러한 젠더관과 친숙한 면이 있다. 성별의 실체가 공하여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가르침은 일찍이 여러 대승경전의 여성주인공들에 의해서 설파된 바 있지 않은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내지 못한 성문 제자들을 꾸짖으며 유마경의 천녀와 같은 여성들은 남성으로 변성하거나, 남성과 성별을 서로 바꾸면서 젠더의 공성을 직접 보여주었다.

조승미 동국대 불교여성학 박사
조승미 동국대 불교여성학 박사

새로운 젠더문화의 시대, 불교의 공사상은 기존 이분법적인 젠더관념을 탈피하는데 철학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새로운 변화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낡은 젠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차별과 혐오 그리고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가 수반되어야 새로운 사회로의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 실천을 이끌 것인가. 중앙의 지도자에게도 그 역할이 촉구되어야 하겠지만, 낡은 인식을 넘어서고자 하는 선한 마음들이 수평적인 연대로 서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이들이 평등과 비폭력을 함께 외칠 때, 불법은 등불이 되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이 음습한 어두움을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