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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KBS 국민 위로 한다더니 찬송가

  • 기자칼럼
  • 입력 2021.01.01 23:17
  • 수정 2021.01.08 16:44
  • 호수 1568
  • 댓글 15

제야음악회에 뜬금없이 ‘놀라운 은총…’
“공영방송이 다른 종교인 대놓고 무시”

KBS가 2020년 오후 11시 생방송으로 진행한 '제야음악회 새날마중'에서 뮤지컬 배우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 KBS 캡쳐
KBS가 2020년 12월31일 오후 11시 생방송으로 진행한 '제야음악회 새날마중'에서 뮤지컬 배우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 KBS 캡쳐

기자가 직업이다 보니 매년 마지막 날에는 해넘이법회, 송년법회, 신년타종, 해넘이 템플스테이, 통알(새해)법회, 해맞이법회 등의 스케줄을 조정해 밤새워 6~8곳을 취재를 다녔다. 하지만 이번 연말에는 불교계 단체와 사찰들이 코로나19로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 이번 연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연말 특집프로그램을 느긋이 지켜보며 송구영신할 수 있는 뜻밖의 휴가와 같은 날이었다.

2020년 12월31일 가족과 함께 KBS에서 11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제야음악회 2021 새날마중' 1부 ‘위로’를 시청하다 깜짝 놀랐다. 국영방송인 KBS에서 두 번째 출연자인 뮤지컬배우 정선아씨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이 곡은 11살부터 흑인무역상선을 탔던 선원 존 뉴턴이 신부가 되어 작사해 1779년에 출간한 기독교 찬송가다. 존 뉴턴은 흑인 노예를 운반하며 흑인을 짐짝 취급하며 학대 속에서 탈수, 영양실조, 간염 등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크게 반성했다. 그는 22살 때 폭풍우를 만나 죽을 위기에서 기도를 하면서 처음으로 절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를 했고 그 경험을 노래가사로 적었다. 곡은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죄를 사해 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널리 알다시피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가사는 '놀라운 은총이여 나같은 죄인 살리셨네' 혹은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로 시작된다. 방송 내내 자막으로 나왔던 이 노래 가사는 코로나19를 위로하는 노래로 보기에는 너무도 뜬금없었다. 가사에는 흑인 노예를 실어 나르던 선원이 폭풍우를 만나 자신의 죄를 용서해줘 감사하다면서도 ‘흑인무역상선’을 6년이나 더 탔던 그는 흑인들에 대한 뉘우침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하나님만 찬양한 노래일 뿐이다.

언론에 따르면 1월1일 새벽 수도권 교회에서만 3만여 곳에서 송구영신 예배가 진행됐다. 대부분 교회는 방역 지침을 준수해 온라인 예배로 진행됐다지만 일부 교회가 해당 예배를 진행하면서 방역 지침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미 크리스마스에도 방역수칙을 위반한 곳이 적발되고 계속된 교회관련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는 1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쪼개기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언론에 의해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노래 자체가 내가 잘못된 짓은 분명히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줘서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KBS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방역지침을 어기며 코로나19 확산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자신은 안 걸려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선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 7월에도 국립합창단이 여수시민회관에서 진행된 ‘행복나눔콘서트’가 “국민모두가 예술이 주는 기쁨과 문화를 통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와 무색케 기독교 찬송가 일색의 곡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 때문에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기독교 행사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국영방송이다. 부처님오신날이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 종교의 기념일을 축하하며 분위기에 맞는 종교적인 편성과 기획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전 국민을 위로하는 노래가 하필 찬송가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이날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나 다른 종교의 성가곡이 들어있어도 KBS는 방영하도록 했을까.

‘제야음악회 2021 새날마중’을 편성한 KBS 관계자들의 의도적인 종교편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특정종교의 찬송가와 위로의 노래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KBS 관계자들의 무신경과 기독교인을 제외한 국민 정서에 대한 몰이해는 지적받기에 충분하다.

한 불자는 SNS를 통해 “국영방송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와 KBS시청자 상담실에 항의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며 “아직도 공영방송을 선교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이 호시탐탐 기회만 보고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연일 나오는 종교단체발 코로나 감염이 소위 신교라는 기독교 교회가 주범인데 종교전체로 포장해서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이 시국에 누가 교회를 좋아한다고 굳이 찬송가를 트는 국영방송은 시청료를 내는 80%의 다른 종교인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용훈 호남주재 기자
신용훈 호남주재 기자

올해 우여곡절 끝에 몇몇 정치인을 비롯해 불교계 및 시민단체 등 노력에 의해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이 법이 통과돼 국민 모두가 종교나 이념, 성별, 나이, 인종, 국가 등의 다름에 따라 차별받지 않기를 기대한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아니라도 이러한 방송과 문화, 예술 등의 보이지 않는 종교편향과 편견 등 차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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