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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새 지평 열 활로 찾아야 한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1.05 10:19
  • 호수 1568
  • 댓글 0

도의국사 ‘선 전래’ 1200년
선정 지상주의’ 과감히 깨고
‘선원 민낯’ 드러내 성찰해야

중국의 선(禪)을 신라에 처음 전한 스님은 선덕여왕 때 당(唐)에 들어가 중국 선종의 4조 도신의 선법을 받아 온 법랑이다.

그러나 선(조사선)의 본격적 유입은 신라 말, 고려 초의 구산선문을 통해 시작됐다고 보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부분 마조도일의 선법을 받아왔는데 당시 가지산문의 종조이자 현 조계종의 종조로 추앙받는 도의(道義) 국사가 대표적이다. 이에 기반해 조계종은 이 땅에 처음 조사선을 전한 스님을 도의국사로 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도의국사가 한국에 선을 전한 지 올해로 1200년이다.

그로부터 300여년 후, 이 땅에 전래된 조사선은 보조지눌의 출현과 함께 큰 변화를 맞는다. 중국의 대혜종고가 주창한 간화선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는 수좌 스님들은 오늘도 화두를 들고 있다. ‘의단독로·삼매·돈오’로 상징되는 간화선을 조계종이 올곧이 잇고 있는 셈이다.

“좌선 일변도 수행만으로는 못 깨닫는다.”

지난 한 해 불교계를 강타했던 전 해인사 소림선원장 효담 스님의 한 마디다. 따지고 보면 결코 경천동지할 언급은 아니었다. 남악회양이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듯, 좌선만 하여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마조도일에게 일침을 가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저 ‘한 마디’가 준엄한 ‘일갈’로 울렸던 건 지금도 ‘좌선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기 때문이다.

‘교학을 놓고 선에 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된 사교입선(捨敎入禪)은 ‘교학을 버리고 선에 들어야 한다’고 왜곡됐던 때가 있었다. 급기야 교학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언어·문자가 갖고 있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상황에 따라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는 ‘경전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부처님 말씀을 모르고, 선의 진수를 이해조차 못한 상태에서 화두만 든다고 한다면 이것 또한 ‘벽돌 갈아 거울 만드는 것’의 다름 아닐 것이다. 간화선을 세운 대혜종고는 경전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넓은 교학과 역대 선지식의 어록을 실참실수하라는 교훈을 전했다. 30권에 이르는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이 증명하고 있다. 조계종 일각에서 시작된 이러한 오판은 의외로 저간에 급속도로 퍼졌다. 2000년 전후로 ‘선정 지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선가에 날아들었던 연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던가. 효담 스님과 당시 좌담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짚어보려 했던 것은 ‘현 선원에서의 수행 풍토가 적확한가?’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라고 본다, 법문, 독참, 청익이 거의 사라진 현실을 토로했던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20년 전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를 지금부터라도 개선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법문, 청익 등에 대한 언급은 방장·조실 스님들에게도 돌아가는 것이어서 조심스러울 수 있다. 총림과 선원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읽힐 소지도 있지만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덕산 방(棒)과도 같은 ‘서릿발 지도점검’의 필요성을 갈구한 것이라고 본다. 조동종 중흥조 천동정각(天童正覺)이 제자들에게 전한 말을 들어보자 “나는 평생 그대들을 욕하기도 하고, 심하면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가기 위한 법석인 것이다. 도반들이여! 나의 간절한 이 마음을 자비심으로 받아 달라!” 이때 대중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좀 더 다양한 담론을 통해 더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짚어가야 했다. 일례로 결제 중의 선원에서는 경전이나 어록을 정녕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인지, 해제 후 수좌들이 경청할 다양한 강석은 도처에 마련돼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 않는가? 더 나아가 일정 기간의 교학을 공부한 후 기초선원으로 가는 교육제도도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도의국사가 선을 전한지 1200년이 되는 한 해가 시작됐다. ‘한국 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성찰과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를 기대한다. 지난해보다 더 충격적인 민낯이라도 과감히 드러내고, 그에 따른 쇄신의 길을 찾아가 보자. 이 또한 ‘선(禪)으로 가는 길’이다.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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