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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특집] 소와 불교

  • 새해특집
  • 입력 2021.01.05 14:18
  • 수정 2021.01.05 14:22
  • 호수 1568
  • 댓글 0

소는 인간 본성…깨달음 이끄는 신령한 동물

송광사 승보전에 그려진 ‘심우도’ 중 득우(得牛). 송광사 제공. Ⓒ 안홍범 사진작가
송광사 승보전에 그려진 ‘심우도’ 중 득우(得牛). 송광사 제공. Ⓒ 안홍범 사진작가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다. 신축년에서의 ‘신’은 백색을 의미하므로 ‘하얀 소의 해’다. 불교에서 ‘하얀 소’는 불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축년은 불자들에게 자신의 본성을 되돌아보아야 할 해라고 할 수 있다. 십이지 두 번째 자리에 해당하는 소는 북동북 방향과 음력 12월, 1~3시를 지키는 방향신이자 시간신이며 ‘약사경’을 외우는 불자들을 지키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24절기 중 소한(양력 1월5일 경)과 대한(약력 1월20일경), 국악의 12율 중 ‘대려’를 상징하기도 한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했다. 고된 농사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였으며 말을 살 수 없었던 서민들의 주된 운송, 이동수단이었다. 제의의 최고 희생물, 재산으로 여겨져 다른 가축에 비해 중요성이 높았으며 상서로운 동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민간 설화에서의 소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근대까지 소는 주된 노동력으로서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소 한 마리 노동량은 사람 일곱 명과 맞먹었으며 간단한 말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황해도 안악 고분벽화(357년)와 평남 강서 약수리 고분벽화(408년) 등에서 코뚜레가 걸려 있는 소를 볼 수 있으며 ‘소 없이는 농사 못 짓는다’ ‘소는 쟁기 갈이에, 말은 물건이나 사람 운반’ 등의 속설도 이런 관념에서 유래됐다. 이렇듯 소와 사람이 뗄 수 없는 관계인 가운데 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진다.

‘견우직녀’ 이야기에서 견우는 늙은 소 한 마리에 의지해 황무지를 일구며 삶을 꾸렸다. 한두 해가 지나 그럭저럭 살만해졌지만 늙은 소를 제외하면 자기 혼자였던지라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늙은 소가 사람처럼 말하며 직녀에 대해 말해준다. 여기서 소는 신묘한 능력과 통찰력으로 아내를 얻을 수 있게 조언했으며 유일한 가족이자 삶의 터전을 같이 일군 동반자다. 옛사람들은 소와 같이 일하며 자연스럽게 가축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느꼈을 것이다.

소를 가족같이 여기는 이야기가 더 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이 시골길을 가던 중에 두 마리 소를 부리며 일을 하는 농부와 마주쳤다. 황희 정승은 그 모습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농부에게 “이보게, 그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나?”라며 소리쳐 물었다. 농부는 대답 않고 묵묵히 일하다 황희 정승이 가까이 오자 “검은 소가 더 잘합니다”라고 속삭였다. 황희 정승은 “왜 속삭이는가”라며 물었고 농부는 “아무리 짐승이라 할지라도 누렁소가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민간 설화에서 소는 ‘동반자’ ‘가족 구성원’ 등 단순한 농사도구가 아닌 감정이 있는 지성체로 사람과 친밀한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불자에게 깨달음 주는 소
불교에서 소는 인간의 본성을 뜻한다. 직접적으로 깨달음을 전달하지 않으나 매개체로서 간접적인 역할을 겸했다. 늘 가까이 있는 친숙한 존재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소를 볼 때마다 바른 삶의 태도를 지킬 수 있었다.

선재동자가 검은 소를 몰고 산책 구경 중이었다. 그러던 중 잠깐 사이 소가 고삐를 풀고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동자는 사방을 뛰어다녀 겨우 소의 발자국을 찾을 수 있었다. 발자취를 따라가 소를 찾은 동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를 타고 돌아오는데, 소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소는 하얘지다 못해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동자는 허탈한 마음 대신 평안한 마음이 들었고 소를 통한 깨달음을 중생에게 가르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위 이야기는 불교의 도를 깨닫는 과정인 심우도(尋牛圖)의 내용으로 소의 정체는 진리, 인간의 본성을 나타낸다.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立廛垂手) 순으로 그려지며 검은 소는 삼독에 물든 거친 본성을, 하얀 소는 번뇌, 욕망 등이 사라진 깨끗한 본성을 뜻한다.

 

불교설화에서의 소
깨달음의 매개체로서 불교 설화에 등장한 소지만 불법을 수호하고 돕는 역할도 겸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공주 갑사와 봉화 청량사다.

갑사는 길목에 자리한 탑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진다. 인호 스님은 정유재란(1597년)으로 소실된 갑사 재건을 위해 스님들과 대웅전 복원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행이 더디고 자재부족 등 어려움이 많았다. 어느 날 인호 스님의 꿈에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불사를 돕겠다”고 말했고 잠에서 깨 방문을 열자 그 소가 서있었다. 이후 소는 불사를 위해 자재를 구하고 운반하는 등 힘을 보탰고 회향을 앞둔 날 기력이 다해 쓰러졌다. 갑사 스님들은 소의 공덕을 위해 탑을 세웠는데 그 탑이 ‘공우탑(功牛塔)’이다.

청량사 삼각우총은 청량사 유리보전 앞에 자리했는데 이름처럼 세 개의 뿔이 달린 소와 관련한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원효 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진력을 쏟던 중 사하촌에 내려가게 됐다. 사하촌에서 뿔이 셋 달린 소를 데리고 있던 농부를 만났다. 그런데 소는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에 원효 대사가 농부에게 소를 시주할 것을 권했고 농부는 흔쾌히 수락했다. 신기하게도 소는 절에 온 후 청량사를 짓는 데 필요한 자재를 밤낮으로 운반하더니 준공을 하루 남겨 놓고 죽었다. 이후 원효 대사가 소를 묻었고 자리에서 소나무가 자랐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삼각우송, 무덤을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불렀다.

이밖에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 이전 이름인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성씨인 ‘고타마’는 ‘매우 좋은 소’ ‘거룩한 소’를 뜻하고 보조 지눌 국사의 호는 ‘소 치는 사람’을 뜻하는 ‘목우자’, 경허 선사의 호가 ‘깨어있는 소’라는 뜻의 ‘성우’다. 만해 스님은 자택의 이름을 ‘소를 찾는 곳’이라는 뜻의 ‘심우장’으로 지었다. 초기경전 ‘증일아함경’의 ‘목우품’에서 부처님이 수행자가 깨달음을 위해 성취해야 할 도리를 소몰이꾼이 해야 할 열 한 가지 법에 비유한 구절을 찾아볼 수도 있다. 이처럼 소는 불교와 꾸준한 인연을 지속해왔으며 깨달음을 위한 매개체로 매우 친근한 동물이다.

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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