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소는 전통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한집에 머물며 가족처럼 친근했으며 농사에도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이는 세시풍속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정월 초하루마다 소를 보고 농사를 점친다. 새벽에 소가 울면 풍년이라고 하며 찰밥, 오곡밥, 나물 등을 얹은 키를 소에게 내밀었을 때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다. 조선시대 태조 이래 역대 임금들은 풍년을 기원하며 선농단(사적 제436호)에서 소머리를 한 농경신 신농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단 남쪽에 마련된 적전에서 왕이 친히 밭을 갈아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리기도 했다.
새해 첫 ‘소의 날’은 소의 생일날이다. 이날은 쟁기를 만지거나, 식량을 집 밖으로 갖고 나가는 것을 비롯해 쇠고기를 써는 것과 먹는 등의 행위를 삼갔다. 오히려 소를 배불리 먹였으며 외양간에 ‘뱀 사(蛇)’자를 거꾸로 붙여 힘내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입춘과 설 전후에는 농사의 시작과 권농을 알리는 상징적 활동들이 전개됐다. 고려사에 따르면 성종 7년(988) 농사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입춘 전날에 토우를 길거리에 세웠으며 단종 6년(1021)에는 설에 한기를 쫓고자 흙으로 소머리를 만들었다. 또 매년 입춘 아침, 길 위에서 목우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려 풍·흉년을 점쳤다. 함경도에서는 입춘이 되면 목우를 끌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경기도와 황해도에서는 입춘과 추석에 멍석과 한지, 헝겊으로 소 형상의 탈을 제작해 소처럼 움직이며 몰이꾼을 따라 집집을 돌아다녔다. 또 소를 그려 국가에 바치고, 관청의 토우를 끌어내 채찍질을 하며 소를 부리는 의식인 ‘타춘’으로 풍년과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농기계의 등장에 농경사회 최고 노동력이었던 소의 가치가 다소 퇴색됐다. 그러나 전국에서 소를 위한 풍습이 남아있으며 이는 고생한 소를 가족처럼 대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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